나의 이야기

추웠던 기억속에..

짬스탑 2010. 1. 6. 19:43

 


 

부산이 지금 온도가 많이 내려갔습니다. 몇일 계속되는한파에 날이 추운것이 벌어먹고 산다는것에 어려움을 느끼게되네요. 솔직히 중부지방이나 강원도쪽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요근래 몇년간은 부산에 별로 추운겨울이 없었습니다. 내 기억으로는 남아있는 가장추운 겨울은 내가 방위라는 병역근무를 하고 있던 1980년도 겨울에 낙동강근처의시온섬이라는곳에서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 그 당시 하구언댐이 만들기전이라 바닷물이 만조가되면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그런시절이었는데 강가기슭에는 바닷물이있는 짠물이었음에도 그 강옆으로약한 얼음이 얼어서 아침에 근무를 나가면 큰고니들이 뒤뚱거리면 얼음위의 벌판을 걷고있던 기억이 납니다. 을숙도라는곳 바로 밑의 섬에서 근무를 했지요. 지금은 그곳이 지하철의 종점이자 차량기지창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강변쪽은 매립을 많이 해서 일반 주택가가 되어버렸고 우리초등친구의 만남의 광장 막걸리 가게도 그동네에 있어서 자주 찾는편입니다. 옛날의 어릴때의추억을 그리워하면서 말입니다. 지금도 날이 엄청나게 차면 항상 그 방위받던시절이 생각나는것은 그처렴 좋던 자연이 어느날 깜쪽같이 없어지고 몇년을 외국에 나갔다가 온 사람처럼 그곳을 그시절이 생각납니다. 그 때는 아들은 5살이고 집사람은 나 대신 가정의 생계를 꾸려나가고 할 힘든 시절이었습니다. 남들처럼 군대를 가지못하는것이 방위가 무슨 자랑이냐하시겠지만 .. 그래도 나에게는 신성한 병역의무를 다할수 있게 된것이 자랑스럽다하겠습니다. 그 앞의해에 80년에 해운대에서 뜨거운 여름에 신병교육을 마치고 군번을 받고 아무래도 집에서 도시락을 싸서 다니는 형편의 국방의무를 하기에 3주훈련을 아주 심하게 피교육생으로 교육을 마치고 가을이 익어가는 9월말쯤에 장림시장위의 6339부대의 3중대 3소대를 배정받았습니다. 원래 그부대는 영도태종대에 연대가 있고 중대본부는 감천 삼성중학교옆산위에 있었습니다. 30년이 지난시절이라서 지금도 있는지는 모르겠습니다. 이 연대는 4개의 중대를 가지고서 해안경계를 하는데 3개중대가 낙동강에서부터 영도 태종대까지의 해안경계를 하는부대였습니다. 그러니 1개예비중대는 9개월을 해안경계근무를 하고 나머지 3개월은 교육중대라는곳에 올라가서 3개월동안 다시 군사훈련을 빡세게받으면서 쉬는활동을 합니다. 그당시는 다대포 간첩사건도 있고 하던 그런시절이었습니다. 다대포가 군사적인 요충지는 아니지만 그곳 바다로침투해서 간첩이 들어왔다는데 그래서 더 경계가 삼엄한지역이었던것같습니다. 일단 배치를 받은곳이 3중대3소대인데 우리의 해안경계구역은 장림의 무지개공단에서부터 을숙도 까지가 근무총괄경계지역이었습니다. 어릴때 장림에 낚시다닌다고 그 산넘어 놀러다닐때 군인들을 본것도 같은데 그 초소가 바로 내가 배치받을줄은 몰랐습니다. 군에 오기전에 쥐고기 많이 실어날랐는데.포를 뜨는 공장이 그 산밑에 많이 있었는데 바로 그 초소입구에 쥐포공장이 있어서 많이 그리로 다녔습니다. 일단 배치를 받고나니 다시 분초소로 보내집니다. 소대초소에는 8명이와서 2명이 분초로 내려간다는데 누가 갈지 잘몰랐고 이곳의 군인들은 모두 흩어져서 생활을 하는 아주 이상한 군대였습니다.

이윽고 내가 분초로 배치를 받았습니다.
이분초는 을숙도 밑에 시온섬이란곳에 자리하는데 앞에는 철새조망대가 있고 
근처에는 방갈로 술집들이 억새풀로 엮어서 만든 술집과 라이브 카페가 있었습니다.
특히 주말쯤 되면 동아대가 가까워서 대학생들이 놀러와서 
기타치고 노래하고 피아노도 치고 하는그런곳이었습니다.
근처에는 모두 대파밭이고 주위에는 갈대숲이고 참 자연의 그대로있는 풍경의 카페들이었습니다.
이 시온섬초소에는 현역5명이외에 방위가 주간둘 야간4명이함께 교대근무를 하는그런 임무를 맡았습니다.
둘이 배치를 받았는데 나는 운전을 하다가 군을 갔으니 발전기같은것을 조작하고 
딱고 조이고 그외에 경계와 청소같은허드레일을 보고 또 하나는 집에서 출퇴근이 어려운 
사람을 하나 먹고 자면서 짬밥이라고 식당에 주방일을 볼사람을 뽑아서 둘이갔습니다.
일단 장림산골짝보다는 났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이곳을 내려와보니 아주 천국같았습니다.
집에서 누가 돈만 벌어서 살림을 해결만 해주면 방위로 말뚝밖아도 될만큼 좋은 군대였습니다.
그러나 다 방위병을 괴롭히는 현역병들이 있기 마련입니다.
현역병들이 담배안사온다고 엄청나게 돌리기도하고 사람을 많이 괴롭히기도 했지요.
그 분초소의 장은 육군중사인데 3소대의 선임하사였습니다.
그 선임하사는 모든사람에게는 친철하고 부드럽게 대했는데 현역병가운데 
꼭 한명씩 골때리는 말썽꾼들이 있기마련입니다.
그것은 고생은 좀했지만 그런대로 고생이라고 말할것도 없이 즐거운 군대생활을 하고 지냈습니다.
앞에는 갈매기 날고 청동 오리가 나르고 큰고니 뒤뚱거리며 걸으며 비상하는모습을 
보면서 시온섬에 철새전망대앞에서 그러다 보니 어느새 4개월이 흘러갔습니다.
이제 교육중대 올라갈날도 머지안았는데.
갑자기 날이 추워집니다.
아주 영하 10도는 기본이고 한몇일 추운날이 계속되었습니다.
이동네 낙동강 하구언쪽의 고기잡는작은배들이 밤에 어업금지구역에 낚시를 풀러들어갔다가 
밤에 경계하는군인들에게 잡혀서 어업허가증을 뺏기고 아침이면 군인들이 쓸물건과 
음료수와 빵을 잔뜩사가지고 와서 손이 발이되도록 빌고 허가증을 내주면 
고맙다는말을 하고 가는그런 순진한 낙동강가였는데 말입니다.
날은 추운데 이제 교육중대로 올라갈시간이 다되었습니다.
중대장은 9개월간의 해안경계 근무에 수고했다고 교육중대올라가면 쉬면서 교육도 받고 
각소대별로 흩어져서 근무를 하면서 누가누군지 모르는 상하의 병력들이 모여서 
친선도 다지고 가족적인 분위기를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일단 현지인들과 생활하던 군인들은 큰부대라는 틀에 가둬놓고 매일계속되는 
사격 각개전투 화생방 충정훈련이 날이 엄청나게 찬데도 계속되고 특히 사격 점수가 
나쁘게 나오면 현역이든 방위병이든 중대장은 엄하게 다루었습니다.
어떨때는 방위병도 사격점수가 나쁘게 나오면 퇴근을 안시킬정도였으니 말입니다.
그해 겨울에 눈도 많이 왔습니다.
왜그리 그해겨울은 추웠는지.....
낙동강이 어는것을 머리털나고 처음보았고 철새들이 날아다니기에는 영하17도는 아주 
적합한 날씨같았습니다.
교육중대에 올라가서도 부산에서 눈을 맞으며 지냈고 추운데도 훈련은 동절기훈련이라고 
아미산 꼭대기에 올라가서 땅파고 동계훈련한다고 땅파고 텐트도 쳤습니다.
땅이 얼어서 한30cm쯤 파야 그밑에는 얼지않은 흙이나오는데 그걸 70cm이되도록 파고 
그 밑에 짚을 깔고 그위에 텐트를 치고서 사흘을 보내기도 하는데 그 해겨울 유난히 
추웠던것이 30년이 지난 지금도 생각이 납니다.
사실 저 윗지방에서는 이런것은 아무것도아니지만 저에게는 아주 힘들게 겨울을 난것이 
기억속에 자리잡고있는게 아련하니 오늘같은날이면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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