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M,F 가 그리워진다..

2008. 5. 28. 10:01나의일.

참치 독항선에서 하역되어 올라오는 빅 아이.(눈다랑어)

 


저와 고기(어류생선)와는 뗄래야 뗄수 없는 관계인것 같습니다.
어려서 벌어먹고 살기위한 수단으로 화물차 운전을 배웠고 
그 운송의 주 화물이 거의가 수산물이었습니다.
주로 냉동명태나 오징어 임연수가 주 종이었고 나이가 조금 들어서는 
부산공동어시장에서 생물 (고등어 칼치 정어리)생선(鮮어)운송을 한10년했습니다..
그러다보니 도합 수산물의 운송을 한 35년정도 된것같습니다.
남들은 한가지일에 몰두를 하면 돈을 벌거나 달인소리를 듣는데 
저는 일개의 화물차주겸 기사에 지나지 않는 그런 평범함 삶을 살고 있습니다.
고기를 한 삼십년 실다보니 귀동냥으로 듣고 보는눈이 많아져서 
웬만한 어업의 방식과 잡는법 키우는법 먹는법 가공하는법과 
다양한 어류의 해박한 지식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직업의 한계인지 내가 많이 못배워서 그런지 이 틀에서 벗어나지를 못하고 
지금은 I,M,F때보다 더 못한 어려운 환경에 놓여져있습니다.
이정도 되면 명망있는 박사는 못되어도 노후 걱정은 않하고 살아야되는데 
노후는 고사하고 하루 하루를 힘겹게 어렵게 살고 있습니다.
제 차는 영업용 화물차로서 소속회사가 면허를 가지고 우리는 차와 사람을 데고 
지입을 하면서 지입료를 한달에 20만원을 주면서 개인이 사업자등록을 내서 운영하는 
일명 지입 대형화물차입니다.
차의 무게는 18톤으로 대한민국의 일반 트럭에서는 25톤 트럭밑으로 크기에서는 
두번째를 갑니다.
크기가 크면 운송량도 많아서 한번에 아주 많은량을 운반합니다.
좀 실을때는 적재중량위반이지만 한 30톤쯤은 너끈히 실어나르는것으로 
이 운수업계통에는 일반적인 일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모든것이 글로벌화가 되다보니 중국이라는 거대한 나라가 
많은 인구를 무기로 값싼노동력과 인해전술로 우리의 10/1의 단가에 
이 물량을 처리를 해주는 단계로 발전했습니다.
평생 수산물만 운반 하던 사람이 운송물량이 전에는 배로 들어와서 
부산에서 모두 하역하던것을  이제는 중국에서 하역을 합니다.
한 10년전만해도 중국에 시설이나 모든 여건이 한국의 쨉도 못되었는데 
이제는 큰 냉동창고도 짓고 모든 물류의 설비를 갖추고 저 단가에 물량을 유치해서 
장기보관을 해주면서 한국과 여러나라의 바이어를 환대하면서 모셔가는 실정입니다.
이런지경이 되다보니 한국부산에서 하역을 해서 냉동창고에 넣고 경비를 
계산할때 100으로 보면 중국에서 하역후 우리나라에 컨터이너로 다시 
물품을 보내와도 85가 넘지않는다는것입니다.
바이어들은 경비절감 효과가 뛰어나니 배를 중국에다 돌리는것은 당연하겠지요.,
하지만 그동안 우리는 하늘만 쳐다보고 살아야 한다는것이 문제가 발생되는것입니다.

최상품의 참치가 분류작업되고 있습니다. 큰놈은 100kg정도. 거기다가 운송료는 15년전에 올랐다가 다시 떨어졌는데 그것도 괜찮았습니다. 떨어진 운송료는 일을 많이 해서 그 것을 커버 할수 있었습니다. 그때 부지런히 일해서 돈도 조금 벌었고 집도 샀습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입니다. 2년전부터 우리 화물차에 쓰는 경유가격이 폭등을 하더니 한십년전에는 1리터에 한500원정도 했는가 싶습니다. 내 지난장부를 꺼내보니 93년도에는 1리터에 274원정도 했는데 이제는 경유가 거의 2,000원을 육박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는 경유차를 사용하면은 환경분담금도 물어야하고 비싼기름에 산업용인 사업용 차량이 굴러다닐수가 없습니다. 지금 우리같은 큰차들이 대구를 40만원받고 다니는데 기름값이 27만원듭니다. 13만원이 남는데 그게 다 남는것이 아니고요... 도로비며 식사비면 엔진오일이며 타이어 소모비는 하나도 넣지않은것입니다. 멀리가면 갈수록 기름이 많이 먹으니 더 손실분이 크게 발생합니다.. 저도 이 직업을 오래해왔지만 이런적은 없었습니다. 거기다가 이제 저의 차도 클러치 디스크가 다 되었는지 기어가 잘 않들어가서 트랜스 밋션을 내려서 작업을 해야하는데 이게 한 2백만원정도 드는돈입니다. 참으로 엎친데 덮치는격입니다.... 한몇일 일을 빤짝했습니다. 그러나 일을하면 뭣합니까... 운송료가 바닥인데 해봐야 남는것이 없으니 말입니다. 마지 못해서 놀지 못해서 일은 하는데 손에 지는것은 거의 빈봉투이니 말입니다. 이 일을 풀어풀 당국도 없고 총대를 매고 운송료를 올려달라고 할 사람도 없습니다. 누구를 주체로 운송료를 올려달라고 하겠습니까.. 서비스 업이다보니 쓸 사람이 조건에 않맞으면 하루 아침에 파리목숨 되는것은 불 보듯 뻔하고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모두 남이 먼저 고양이 목에 방울을 달아주기만 을 눈치만 보면서 기다리고 이는것입니다. 내가 예전에 부산공동어시장에 중매인조합을 상대로 운송료 협상에 대표로 나간적이 있습니다. 말로는 뒤에서 밀어줄께 해놓고는 오늘 차를 다 세우자라고 해놓고 그래도 뒤에서는 그 집 물량을 딴곳에 뺏길까 싶어서 일하는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이게 인간의 섭리이니 어찌할도리가 없는것입니다.. 지나간것은 과거이고 앞으로 먹고 살기가 더 막막하다는데 문제가 있습니다. 이번에 화물연대가 이것을 정부에 풀어달라고 문제를 제기한것같은데 이것을 자기일도 아닌데 정부당국에서 어느누가 신경을 자기일같이 쓰겠습니까.?

참치 작업의 꽃이 매달려올라고고 있습니다. 어창에서 이런식으로 달아올립니다.. 우리가 김영삼 정부때 I,M,F때도 이렇게 어렵지는 않았습니다. 그때는 그래고 국가의 외환이 딸려서 일어난문제였지 국내 내수의 문제로 일어난 문제는 아니여서 일을 제법할수 있었습니다. 지금은 말이 좋아 사업자이지 일반 셀러리맨보다 못하게 살고 있습니다. 한달에 돈백만원�아봐야 기름값 제하고 보험내고 세금내고 타이어 닳고 여관비라도 아껴볼 욕심으로 잠은 차에서 자며 벌어야 고작 돈 백만원정도의 수입을 집에 가져갈수 잇습니다. 남들은 회사에서 꼬빡꼬빡 나오는 월급에 보너스에 주 5일 근무라고 선진국 대열에 들었다고 좋아하지만 운수 자영업자는 궁지에 내몰려서 이제 길거리로 나 앉아야 할판입니다. 이제 그리운 시절 I,M,F가 그리워 지는 시절이 온것입니다. 그 누가 이 어려운 난국을 풀어줄수가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나보다 머리좋고 많이 배우신분들이 저위에서 책상에 앉아서 지시만 하면 모든것들은 다 그렇게 돌아갑니다. 과연 이것이 국제적인 기름값 요인인지 아니면 우리가 지도자를 잘 못뽑아서 이런건지 정말 걱정됩니다. 솔직히 걱정한다고 더 나아질것도 없습니다.. 그리고 요즘 쇠고기 촛불 문화제가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 예전같이 화염병도 없고 보도블럭을 깨서 돌멩이도 없고 쇠파이프도 없는 이런 시위를 경찰이 너무 강제도 진압하는것보면 많이 가슴이 아픕니다. 이젠 경찰도 이런문화를 인정하고 국민들의 바라는점이 무엇인가를 알아야 합니다. 특히 서울쪽의 스트라이크는 별로 이지만 이쪽 경상도 부산쪽 사람들은 불과같습니다. 한번 붙었다하면 끝장을 보는 사람들이니 경찰들도 너무 강경진압을 하시면 않될것같습니다. 예전에 전두환시절의 데모를 많이 봐왔던 저로서는 부산 사람들은
데모가 일어나지 않게 경찰들이 살살 잘 구슬려서 해산을 유도해야지 
강경하게나가면 큰일이 일어날것을 명심해야 겟습니다.
어쨋든 지나간 I,M,F가 그리워지는건 저만 의 일은 아닐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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