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어기 (禁魚期)

2008. 5. 17. 17:04나의일.


금요일 오후 부산 감천항에서 고등어 선적 작업중에....

한동안 결혼식 돌아다닌다고 전국을 비좁게 돌아다녔습니다.
이렇게 저의 작업도 금어기(禁魚期)라고 본의 아니게 많이 쉬는날이 생겼습니다.
저는 주로 명태나 원양물을 잡아오는배에서 냉동된 상태의 생선을 
배에서 냉동창고 까지 운송하는일을 하는데 명태란 어종이 12월부터 2월까지 
산란을 마치면 어군이 거의 흩어져서 큰원양어선을 끌고 이곳저곳 잡아봐야 
기름값도 못하는 실정이니 그냥 배를 어군(魚群)이 형성될때 까지 
배를 매달아두는것입니다.
이 금어기는 우리 원양물에 속한것만은 아니고 모든 생선이 다 금어기가 있습니다.
지금 국내의 고등어를 잡는 선망도 금어기라서 산란이나 어자원보호를 위해서
약 한달 정도의 금어기를 설정해놓고 치어와 어족자원을 보호해서 
꾸준히 생산할수 있도록 하는데 뜻이 있는것입니다.
예전에는 이런것이 필요없을정도로 바다에 가서 무진장 잡았는데 
이제는 어업의 기술이 너무 발달 해서 어탐기(소나)라고 
물속의 고기가 몰려다니는것을 볼수 있는 장비가 있고  
참치를 잡는 배는 헬리콥터 까지 동원해서 육안으로 어군을 찾아냅니다.
이러다 보니 고기가 있다면 보이는대로 잡아버리다 보니 큰고기(성어)가  
되기 전에 씨가 마르고 아직 크지도 못한 그런 어류가 많이 잡히게 되었습니다.
어업의 기술은 나날이 발전하고 그 기술로 대량을 잡아들여서 이익을 만들다보니 
너무 많이 포획해서 정어리나 청어는 나중에는 가축을 먹이는 사료공장으로 
처리되기까지 했습니다.
그러나 바다에도 한계가 있는법입니다.
날이면 날마다 잡아올리다보니 이제는 고기가 더 깊은곳 더 험한곳으로 숨어버려서 
잡는배와 숨바꼭질을 하는지경까지 이르렀는데 결국은 고기가 씨가 마르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일본이나 노르웨이 미국같은 어업의 선진국들은 금어기를 설정하고 
어자원보호를 위해서 일어났습니다.
미국은 러시아와 함께 명태어장의 천국인 베링해를 서로 협약을 맺고 서로 
베링에서 어느정도 시험조업을 거쳐서 어자원의 밀도가 어느정도 늘어
경제성이 나면 다시 열기로 하고 그 베링 어장을 폐쇄시켰습니다. 
작년에 조사한 바로는 고기의 밀도가 아주 높으나 좀 더 두고 보호하자는 쪽으로 기울었습니다.
일본도 자국 어장의 보호를 위해서 우리나라어선들이 쿠시로에서 
명태를 잡던배를 이제는 못들어오게 막아버렸습니다.
그래서 쿠시로 에서 명태를 잡던 몇몇회사는 어선 감축과 회사정리에 배를 처분했습니다.
사장은 골치 아프게 사업하는것보다는 일시에 목돈으로 
어업보상을 받는것이 더 좋았을런지 모릅니다.
그러나 그 밑에서 부수적으로 벌어먹고사는 선원이나 부식이나
선구용품을 되던회사와 우리같은 운송업자는 바로 물량이 줄었습니다.
1차 타격이 몸으로 느끼는것입니다.
이제는 우리나라 근해에서도 고기가 씨가 말라서 고기를 잡을려니 그물의 코가 
갈수록 작아져서 어린치어까지다 잡아버리니  더 악순환이 계속 됩니다..
결국 나라에서 이제 금어기를 설정하고 단속을 하는것입니다.
잘아는 예로는 영덕이나 울진에서 잡히는 대게말입니다.
등껍질이 규격에 맞는 자를 가지고 다니면서 그 것보다 작으면 무조건 살려보내야합니다.
작은 치어를 잡다가 단속에 거리면 벌금에 매겨서 다시는 어업을 못할정도로 벌금을 
많이 나오게한것이 그  문제를 해결하게 한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어 자원의씨를 말리는 속칭 고데구리(소형저인망 어업) 가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이것을 근절하는데 몇십년이 걸렸습니다.
근데 이것은 어업에 관계된일이구요...
저는 어업이 본업이 아닌 운수업을 하는데 어찌 직업의 선택이 잘 못되었는지 
운수업이 수산업을 따라서 놀게 되는것입니다.
우리 거래하는 두회사는 명태잡는 원양어선이 3척과 2척이 있고 다른 잡다한 
어종을 잡는배가 여럿있습니다.
그러나 해마다 이맘때면 딸기철이 되고 해도 집사람이 좋아하는 딸기를 
꼭 이 시기만되면 일이 떨어져서 수입이 감소하니 딸기를 한번 못사줬다는것입니다...
그렇다고 고기만 전문적으로 싣는 트럭이지만 다른 화물도 실고 일을 할수있는데 
내가 알고 있는 화물이 나오는쪽은 거의 수산업자이들이다보니 결국 이시즌에는 
일감을 구할수가 없다는거지요...
일이 없으면 그물도 실고 선박 자재도 실고 엔진도 부품도실고 부식같은 짐도 실어나릅니다.
그러나 이것은 수산물의 운송량의 새발의피라서 별로 큰 수익이 않난다는것입니다.

우리 집사람인데 초파일날 부산의 낙동강가 녹산가락쪽의 둔치도에서....
그러다가 이제는 일도 없는데 기름값까지 1,700원이 넘게 올라서 운임을 받아도 그리 남는것이 없습니다. 예전에는 그래도 자영업이라고 웬만한 중소기업의 월급쟁이만큼은 했는데 이제는 아주 막노동자만도 더 못한 수입에서 허덕이고 살아갑니다. 말이 좋아서 자영사업자이지요. 솔직히 말하면 뭔가의 다른 수입원을 찾아야 할 지경에 운수업이 내 몰렸다는이야기입니다. 지금까지 30년넘게 운수업을 종사하면서 살았지만 좋은세월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운수업도 명을 다한것 같습니다. 첫째로는 중국이란 나라가 인구가 많고 싼 노동력으로 우리가 작업하던 물량의 절반가량을 중국으로 가져가 버렸습니다. 저임금과 값싼 노동력과 아주 저렴한 창고보관및 물류비용이 절감되는바람에 많은 업자들이 예전에는 부산에 하역해서 부산의 냉동창고에 맡겨놓고 출하시기를 조절했는데 이제는 고기를 중국에 하역해놓고 창고비용이 적게 들어가니 그 곳에서 필요한만큼 컨테이너에 실어서 다시 배로 들여오니 우리의 운송물량이 아주 절반으로 줄어버린것입니다. 둘째는 국제적인 요인 인 기름값입니다. 예전에 경유가 한300원하던 시절에는 기름값같은것은 걱정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그때보다 약 6배가 올라버려서 1,800원을 호가하는 바람에 멀리 가면 멀리갈 수록 이윤이 떨어지는 기현상이 나타나는것입니다. 이러다보니 이게 일만 죽자고 하지만 남는것은 모두 기름값으로 다 나가버리고 실지로 남는것은 없는것입니다.. 그전에는 돈을 노동해서 전혀벌지않았다고 말은 못합니다. 그래서 그 당시 않먹고 않쓰고 해서 조그만 집이라도 한채 장만했고 아이들 대학교육까지 다 시켰습니다. 남들은 I,M,F 때 우리는 오징어가 많이 잡혀서 운송한다고 정신없이 늦게 까지도 일을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것은 이제 전설따라 삼천리 되어버린것은 옛날이고 눈만 뜨면 오늘은 우리의 작업물량이 있을까를 먼저 걱정하는 정도가 되어버렸습니다. 셋째 기름값은 올라도 운송비는 더 떨어진것이 문제가 되었습니다. 경유가 300원할때는 지금받는돈보다 운송료를 더 받았습니다. 국가에서 5톤미만의 화물차량을 개별로 면허를 내주고 그 차들은 새로운 면허로 새번호를 부여받고 사업을 시작했는데 반납한 면허는 다시 다른새차로 번호판을 운수회사에서 마구 팔아버려서 개별면허를 단 만큼의 차량이 다시 증가를 해버렸습니다. 이것은 반납받은 번호는 면허를 죽여서 다른차는 못달게 해야되는데 그렇게 하면 운수회사들이 죽는다고 로비를 해서 또 그번호를 다시 다른차에다 다시달게 되었던것입니다. 쉽게 말해서 10명이 먹던 밥그릇을 16명이 나누어 먹게 되는꼴이니 결국 운송료의 덤핑이 이어지고 이러다보니 덤핑이 서로 날아오다가 결국 자기의 이윤을 적게 가지고 물량을 받는수밖에 없었던것입니다. 1988년경에 전두환 대통령시절에는 명태한상자의 운임이 144원이었습니다. 그러던것이 화물업자의 난립과 쏟아지는 화물차량의 증차로 인해서 서로 덤핑경쟁에 지금은 기름값이그때보다 4배이상올랐는데 2000년부터 I,M,F 를 핑계꺼리로 지금의 명태 한상자 운송료는 108원으로 도리어 떨어져버렸으니 이게 말이나 되는이야기입니까..... 그것도 괜찮습니다... 일감만 많이 주면 일을 많이 해서 보충을 한다지만 이제는 일감을 기대할수도 없습니다. 그렇다고 30년넘게 배운일이 이것뿐이니 이 난국을 어찌 해결하겠습니까... 일부 화물차들은 경유차에 기름이 너무 비싸서 석유말통으로 석유를 사서 넣고 다닌다고 합니다. 경유가 너무 비싸니 경제성을 맞출수가 없다는것이지요. 다소 엔진에는 무리가 가겠지만 당장의 손실을 좀 메꿔볼려는 임기응변의 현 상황을 그 누가 어느 정책 입안자가 좋은 정책을 만들어주겠습니까... 고속도로를 매일 달리는 기사들은 경비를 아껴볼려고 밤에 고속도로진입을 밤10시 이후에 진입해서 할증을 받고 밥도 되도록이면 싼곳을 찾게 되고 잠은 아예 여관은 꿈도 못꾸며 차안에서 새우잠을 자면서 경제성을 맞추고 있습니다. 이제 금어기는 시간이 가면 풀리겠지요. 부산의 공동어시장의 고등어 잡는 대형선망어업을 하는 조합에서는 길게는 두달을 잡고 있고 우리같이 원양명태 조업하는 원양트롤조합은 약45일정도를 금어기를 설정하고 있습니다. 하긴 일찍 나가봐야 어군형성이 않되서 고기쫏다가 비싼기름만 때고 다니것이니 배도 수리하고 쉬는것은 맞는 일인데.... 불쌍한 수산물 운송 자영업자는 손가락을 빨게 생겼구요. 그 동안의 세금과 보험 그리고 지입회사의 사납금 가족의 생계비등 이루 말할수 없는 금전적인 고통에 시달리게되었습니다. 집안에 든든한 배경이라도 있는 분들은 그 배경으로 일반 회사의 일을 해주는 일명(모찌구미)라도 해서 살아가겠지만 저같이 완전히 독립군같이 외톨이 외로운 사람은 정말 어디한치의 기댈 언덕도 없으니 참으로 막막하기만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꿈을 먹고 살아야지요. 큰꿈은 아니더라도 조금씩 모아서 아이들 혼사준비도 하고 노후도 준비해야 되는데 참으로 어려운 시기를 맞았으니 즐겁게 생각하고 일이 없으면 몸이라도 편하다라고 생각하면서 하루 하루를 감사히 지내야 겠다고 생각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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