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첫대면

짬스탑 2009. 7. 12. 21:07

 

사직야구장에서 다정하게 함께...(핸드폰촬영)

 

이번 토요일에 아들과 교제하는 여자친구가 오게되었습니다. 지난번에 여자애 집에 아들이 먼저 인사를 가서 이번에 답례로 인사오게되었습니다. 나도 집사람도 어떤 아가씨일까 ? 하고 많이 궁금해 했습니다. 솔직히 우리집안은 내세울게 없는 집안이지만 이번에 아들이 찾아간 여자친구네는 안(安)씨네는 왕이 하사한 성(性)이라고 자부심이 대단한 집안이었는데... 우리아들이 안씨네 인사를 갔다가 우리 가문의 족보와 몇대손(孫)인지를 물어오는바람에 아들이 아주 어렵게 되었나봅니다.. 우리 서(徐)씨네 집안은 ...

아버지가 이북신의주 옆의선천에서 6,25때에 피난을 내려온 월남 가족입니다. 그러다보니 이쪽 남한쪽에는 친척이 거의 없습니다. 예전에 내가 어릴때 좌천동에서 아버지와 육촌 되시는 내게 할아버지가 살아계셨는데 서울로 이사를 가버렸습니다. 우리네 집이 못살고 그러다보니 왕래가 뜸해지고 또 서면쪽에서도 여관업을 하시던 그 할아버지 형제분이 계셨는데 어느날 찾아가보니 김해로 이사 갔다는것이 끝으로 우리 집안은 그만 고아아닌 고아가 되어버렸습니다. 결국 몇대손인지는 알길이 없고 다만 내가 어릴때 그 할아버지한테서 파는 진사공파라고 들은것이 있어서 겨우 그정도는 아는데 아마 아들이 그 여자친구의 아버님께 자기네 몇대손인줄 모른다고 좀 혼이 난것같습니다. 일단 오늘 아가씨가 온다니 직장에 다니면서 살림하는 집사람이 아주 혼이납니다. 살림도 좀 치워야되고 집 정리며 청소를 해야하는데 일다닌다고 시간이 없는 관계로 아주 바빳습니다. 내가 5시에 집사람 퇴근을 시키고 장을 좀 봐서 집에 오니 벌써 6시입니다. 그때부터 치우고 준비 하고 청소하는데 7시에 오기로 했으니 집사람은 정신 없이 바쁩니다. 일단 우여곡절끝에 모든것을 스텐바이 하고 있으니 7시조금 넘으니 아들이 조그만 소녀같은 아가씨를 데리고 집으로 들어섭니다. 첫인상이 그리 나쁘지는 않습니다. 일단 인상은 좋은것같습니다. 좀 가냘퍼 보이기는 하지만 그런대로 생각보다는 좋은편인것같습니다. 인사를 받고 같이 앉아서 밀크티를 한잔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나누는데 서로가 지금 좋아지고 있고 많이 호감이 가는상황이고 여자애집안에도 부모님께 인사를 드렸으니 이제 여자애 집 어머니가 사주만 한번 받아보겠다고 했다고 합니다. 이게 잘되면 일사 천리고 이 사주관계가 제일 큰 관건입니다. 일단 양가의 부모들에게 서로 인사를 마쳤으니 자기네들만 좋다고 하면 올해안에도 되겠지만은 여러가지 과제가 남아있는데 아직 저는 이런경험이 부족하고 또 저희네 집안에 어른들이 많이 없는관계로 어찌 할바를 모르겠습니다. 솔직히 내가 데리고 살것도 아니고 자기네들은 따로 독립해서 살림을 할것이니 나는 아무래도 좋습니다만 결혼이라는것이 큰행사이다보니 주위의조언에 많이 배워야 되겠습니다...

 

우리 아들 참 어렵게 키웠습니다. 내가 17살때 우리집사람 18살때에 같이 만나서 살림을 차렸습니다. 서로가 좋아서 책임감있게 살다보니 아이가 생겼는데 어찌하겠습니까. 무조건 낳을수 밖에 없었습니다. 일단 그리고 나도 변변한 직업도 아니고 자동차 운전을 배우고 있던때라 돈을 못벌고 있던 시절이라서 집사람도 직장에 다녀야만 했습니다. 그런데 아이가 생겨서 집사람과 나는 같이 일을하면서 특히 집사람은 온동네 부업을 다 해가면서 아이를 돌보다가 내가 병역의무를 하게되어서 방위근무를 하게된것입니다. 병역의무를 하다보니 결국 집안의 생계가 끊기게 되다보니 지금은 사라졌지만 방문판매라고 집사람이 화장품 외판원을 하러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아이를 걸리고 데리고 그 무거운 화장품 가방을 메고서 다녔는데 너무 힘이 들고 하니 결국 옆집의아주머니에게 아이를 좀 돌보게 부탁을 했는데 옆집아주머니도 흔쾌히 그 부탁이 받아들여집니다. 그때 우리 아들 나이가 아마 한 4살 정도 되었나 싶은데요. 아이는 옆집의 아줌마가 밥챙겨주고 동네 아이들과 어울려놀고 그랬는데 아이는 큰 문제는 없이 잘 자랐습니다. 다만 나는 철이없는 아버지였고 집사람은 내가 방위근무를 하니 식구를 먹여살려야하고 아이를 보니 미안하기가 그지 없지요.. 아이가 쌀 PP포대에 들어가서 놀고 아무데서나 놀다가 피곤하면 쓰러져서자고 일마치고 오면서 그런 모습을 보는 애 엄마의 가슴은 무지아팠겠지요.. 그렇게 큰 아이가 지금의 아들입니다. 어느덧 나이가 서른하고도 2살입니다. 이제 장가갈 나이도 벌써 지났는데 원체 순진하게만 자라서 여자들과는 사귀지도 못했고 또 부모가 너무 젊으니 세대차이가 없고 하니 너무 일찍 결혼하고 싶지않았는지 여지에게는 별로 관심을 않가지더라구요... 이제는 일단 여지친구와 혼담이 오가게 되고 좋은 인연으로 발전했는데.. 이 일이 그냥 쉽게 이루어진것이 아닙니다. 내가 일하는사무실에 안(安)씨라고 여자친구의 삼촌정도 촌수가 되시는분이 같은 사무실에서 저와 같은 일을 합니다. 그 분의 소개로 조카딸에게 다리를 놓게 되었습니다. 요즘 사람들은 없는살림에도 자녀들은 다 정규대학을 나온 인텔리들입니다. 솔직히 저만 못배웠지만... 우리 아들은 동의대 산업공학과를 졸업해서 비행기 부품생산업체에 대리로 근무중이고 이번에 만난아가씨는 동아대를 나오고 교사 임용고시를 준비중인 자격증도 여럿있는 그런 아가씨입니다.. 지금은 방송통신대에 또 다른 과목을 이수중이라고 합니다. 아직 상대방의 상견례는 없지만 사주 를 보고 결과에 따라서 곧 있을 예정 같습니다. 저야 잘되면 좋겠지만 사주라는관문이 또 남아있습니다. 솔직히 사람은 별 사람없습니다. 언제나 내가 말했듣이 남과 남이 만나서 사는데 서로 양보하고 서로 맞춰가면서 살면됩니다. 사랑은 하늘에서 떨어지는것이 아니고 스스로가 양보해가면서 만들어가는것입니다. "남자는 여자하기 나름"이란 최진실이 선전광고같이 여자가 리드만 잘하면 그 사랑은 정말 좋은 작품이 되는것입니다. 이 세상에 특출하게 뛰어난 남자없고 또 특별한 여자 없습니다. 인물은 1년가면 싫증을 느끼지만 사랑은 백년을 갑니다. 서로 위해주고 사랑하고 보살펴주고 상대방의 마음을 헤아려만 준다면 언제나 신혼이고 연애생활이 됩니다. 사랑의 유통기한은 6개월이라고 합니다. 그때가 되면 서로의 신비감도 시들해진다고 합니다. 오래함께 백년해로하신분들도 미운정과 고운정으로 서로를 위하면서 살았기에 백년해로를 했다고 합니다. 서로 참고 힘든것을 견뎌내면 더 사랑이 깊어지거든요... 일단 저도 오늘 아들의 여자 친구를 봤는데 그냥 그런대로 수수하니 안경도 커플로 맞춘것같이 서로 마음이 잘맞는지 잘 지내는것을 보니 얼굴도 비슷하고 하니 잘되기만을 바라는부모의 마음입니다... 우리 부모님들은 이런모습을 보셨으면 얼마나 좋아하셨을까 싶습니다.. 내가 어려서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 어머님이 이런일에 더 생각이 나게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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