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면의 롯데백화점뒷길입니다.
모처럼 해운대라는 영화를 보러 옛고향을 좀 찾아봤습니다.
모처럼 장마비가 멈춘 일요일입니다. 중복이란 이름에 걸맞지않게 너무나 시원한 날씨에 좋은 일요일같습니다. 요즘 아들의 혼담이 오가는중에 팔짜좋게도 영화 관람할 기회를 가졌습니다. 다음주중에 상견례를 가질지도 모르는판인데... 정신없는 놈같지만.일단 영화표도 올12월말까지 5매를 사용해야하기에... 영화관람권이 지정된극장에만 사용할수 있는 티켓이 5매가 왔기에 할수없이 서면으로 가야만 했습니다. 이게 우리집에서 가까운 남포동 근교가 아닌 서면 롯데백화점 뒤에 있는 씨너스라는 멀티상영관입니다.. 나 어릴때 우리아버지가 대한극장옆에서 우유대리점을 했고 우리집은 그 당시에 예전의 부산진 경찰서뒤에 전세로 살았던 기억이 납니다. 우여곡절이 많은 집안이라서 여기서 다 까발릴필요는 없겠지만 .. 그 당시에는 아버지가 우유대리점을 하시면서 내기억속에 우리가정이 제일 잘 살았던것으로 기억합니다. 오늘 우연치 않게 극장표가 서면 씨너스 영화관으로 정해져있는바람에 근 수십년만에 서면이란 거리를 한번 걸어보고 어릴때의 추억을 돌이켜 회상해보게되었습니다. 그 당시 부산상고 자리에는 늘 야구하는 형님들과 경쾌한 딱,딱, 하면서 파란하늘을 날아가는 야구공도 많이 보고 북성극장과 서면로타리 태화극장과 동보극장 그리고 전차정거장, 보라색 전차표, 전차료가 2원50전했던것같고 전차차장이 받으면 바로 절반으로찢어서 깡통에 담던 기억이 나는그런동네였습니다. 그 뒤동네는 서면시장이있었는데 시장의 한가운데 놀이터도 있었습니다. 오늘 가보니 그 시장과 놀이터 자리에 엄청난빌딩과 온갖가게와 술집과 음식점 그리고 수만은 인파와 흑백할것없이 수많은 외국인들 실로 엄청나게 많이 변했습니다. 예전에 내가살던 동네와는 조금떨어졌지만 그곳에서도 어린시절을 보냈고 지금은 없어졌지만 초등학교 입학을 부전초등학교를 입학했습니다. 그런 동네가 이제는 아주 모두가 다 유흥음식점과 가게들로 남포동이 쇠퇴하면서 모두 서면으로 몰려가서 그 주변을 모두 잠식해서 아주 엄청나게 큰 유흥가가 되어버렸더군요.
우리집 방충망에 붙은 매미입니다.
아직 매미보기가 이른데 우리집에 먼저 찾아왔습니다.
오늘 보러간 영화는 설경구 주연의 대한민국 최초의 재난영화로 아주 블록버스터라고 합니다. 제목도 친근한 우리부산의 "해운대"인데.. 근간에 내가 봐왔던 여러영화보다 온가족이 볼수 있는 건전한 그런 재미가 있는 그런영화이고 촬영이나 스케일면에서는 아주 외국영화와 견주어도 경쟁할만한 그런영화이었습니다. 솔직히 말하면 내가 몸이 좀 무거워서 살을 빼는 운동을 해야하는데 그런운동은 하기싫고 영화관람을 좋아하니 집사람과 틈나면 영화도 보고 시장쇼핑도 하고 그러는게 그냥 취미가 되어버렸습니다.. 의사는 살을 빼라고 하는데 살이 생각같이 빼기가 어렵단말씀입니다... 일단 영화관람을 재미있게 하고 나서 그위의 부전시장을 한바퀴돌아서 겨우 산 물품은 싱싱한 부추한단 오이소박이 한다고 말입니다. 점심으로는 모처럼 집사람과의 외식이니 냉면을 한그릇 하러갔는데 그곳에서 한20년전에 아주 친했던 형수를 만났습니다. 사람은 죄짓고는 못사는법입니다. 언제 어디서라도 만나게되어있는가봐요. 어디 산다는 소식을 귀동냥으로만 듣고 살았는데 음식점에 사람이 많아서 밖에서 대기하고 있는데 어떤 아주머니가 나와서 반가이 하기에 가만히 생각해보니 전에 감천 산꼭대기 옥녀봉 전기도없이 살때의 옆집형수였습니다. 지금은 반송에 아파트 분양받아서 살고있는걸로 아는데 그동안 서로 멀어져서 소식도 모르고 살다보니 그간 그형은 폐암으로 먼저가신것은 들은것같은데 그 뒤로는 소식도 모르다가 이제 오늘 음식점에 가서 냉면시켰고 기다리는데 주방에서 뛰어 나와서 반가이 맞아줘서 다시만나게되었습니다. 참 사람은 죽지만 않으면 어디서든 만나지는가봅니다... 예전에 구감에 살던 쌍동이형제의 형이었지요. 그 당시 구감네 가게앞에 냉면집이 있었는데 그 길을 시동도 걸지않고 4.5톤복사 화물트럭에 쌍동이 동생과 친구를 태우고 출근하다가 내리막길에 시동을 걸지않고 내려가다가 차가 서지않으니 내리막길에서 냉면집앞의 전봇대를 들이밖으면서 차를 세우고 감천2동일대가 정전이되고 난리가 났던그런사고의 장본인이었습니다. 그 여파로 동생은 다리가 부러지고 친구도 많이 다쳤는데 동생은 가족이라고 보상이 되지않았고 친구는 다리부러진보상금으로 그 친구집사람이 미장원을 차린것까지는 알고 그 뒤부터는 전혀 만나지못해서 지금까지 모르고 지냈는데 오늘 뜻하지 않게 냉면먹으러 가서 이런 형수를 만나게 된것입니다. 주방에서 일하시던데 음식점이 바빠서 별다른이야기도 못나누고 명함만 한장놓고왔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성공하기는 참 어려운법인가봅니다.. 그 집도 아버지가 중풍으로 먼저 가시고 큰아들도 폐암으로 먼저갔으니 남은가족들이 없는재산에 벌어먹고 산다고 정말 고생입니다. 이제 제가 고민이 생겼습니다. 평소에 옷걱정한번 않하고 살았는데 아들의 혼담이 오가면서 이제 다음주에 아가씨집에서 한번 만나자고 제의가 들어온것같습니다. 우리아들이 그렇게 나쁘게 보이지는 않은것같습니다. 자기네 귀한딸을 주실려고 하는가본데... 일단 만나는것은 문제가 아닌데 이런일은 경험이 없어서 더우기 우리집에 어른이 없다보니 보통 신경쓰이는부분이 아닙니다... 상견례의 예절과 그 다음으로 예단과 함이라든지 결혼식을 치러본 경험도 없고 아주 문외한이라서 아주 걱정이 앞섭니다. 집안에 어른들이 아무도 않계시니 어디 조언을 얻을때도 없고말입니다. 돈벌이도 잘않되서 솔직히 고민도 되고말이지요.. 그러나 아들이 혼사치를만큼의 비용은 있는것같은데 그뒤가 또 문제인것이지요... 살아보니 산넘어서 산입니다. 아이들 학교만 마치면 좋은 시절 오겠구나 싶었는데 .. 이제는 아들혼사 문제이고 그 다음은 딸의 혼사가 걸려있고 참 어려운문제의 연속입니다.. 어찌 해야 잘했다고 소문이 날런지 걱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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