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에 결혼하는 딸아이입니다.
사람이나 동물이나 모든 생물들은 적령기가 차면 다들 종족보존의 법칙인지 아니면 자신의 본능인지 는 모르겠으나 혼인이라는걸 하게되는것같습니다. 나자신도 예외는 아니라서인지 아니면 인생에 눈을 더 일찍떳는지 18살때부터 우리집사람을 만나 어린나이에 살림을 차려서 어느새 아들은 작년에 결혼을 시키고 벌써 한해를 한달넘기고 또 딸아이 결혼을 시키게되었습니다. 첫째 아들을 결혼시킬때에는 나역시 일생에 처음있는대사(大事)라서 정신없이 치르느라고 무언인지도 모르겠고 식장에서 뷔페가 예약이 잘안되어서 힘들게 찾아주신 하객들에게 식사대접도 제대로 못하고 그야말로 번갯불에 콩볶듯이 결혼식을 해치우는바람에 솔직히 많이 미안했습니다. 하여간 우여곡절끝에 여러가족친지분들이 없는시간 할애하셔서 도와주시는바람에 감사히 무사하게 아들혼례는 제 나름대로 잘치른것같았습니다.
요즘나오는 청첩장이 예쁘게도 나오는군요.
그런데 아들을 결혼시킨지 1년하고 겨우 1달이 지났는데 또 딸이 결혼한다니 미안스럽고 죄송스러워서 어디 청첩장을 내놓지를 못하고 아직 한장도 저를 아시는 지인들에게 전해드리질 못했습니다. 더구나 날이 어중간하게 청첩을 드릴즈음에 설이 끼여서 설이 지나면 한장 드려야지 하는마음뿐이었습니다. 설바로 전날 집에서 텔레비젼을 보고있고 집사람은 감천에 있는 큰형님집에가서 설 제수음식을 장만하다가 조금일찍내려왔습니다. 평소같으면 아직 집에 내려올 시간이 안되었는데 말입니다. 내용을 알고보니 집사람의 딸애한테 전화를 받았는데 예비사위가 함을 가지고 온다고합니다. 아니 함은 서로 없기로 했는데 하는생각이 드는데 사돈댁에서는 그냥 간단히 예물하고 과일조금 챙겨서 보낸다고하더군요. 일단 함이 오면 예비사위 식사라도 시켜서 보내야했기에 집사람이 일찍내려온것입니다. 그때부터 부리나케 음식준비를 하더니 한7시넘어서 도착한다고 연락이 왔습니다. 집에서는 안그래도 설밑 작은설이라서 돼지고기나 좀 사다가 삼겹살이나 구워서 먹자고 하면서 고기를 사다두었기에 그걸로 준비했지요. 그래서 아들네도 부르고 예쁜 손녀딸도 작은 아기바구니에 담겨져서 같이 왔습니다. 어린아이는 더욱 예쁜것이 이제 다다음주일이면 백일이 됩니다. 그리고 솔직히 말인데 내핏줄이라서 그런지 더 예쁜것같은것을 느끼게되더군요.
이번에 나온 청첩장입니다.서면태화백화점자리랍니다.
우리 딸도 이제 시집가면 이렇게 예쁜아이를 낳을것이고 사위도 듬직하니 덩치도 큰편에 그런대로 잘맞는부부가 될것같습니다. 함의 형식은 서로 안하기로 약조를 하고 그냥 오곡이 힘들게 왔다갔다하는대신 진주(산청)에서 농사를 짓고 있으니 함에 들어가는 오곡대신 쌀농사를 지으시니 쌀한가마를 주시기로 약조했는데 가방을 열어보니 그속에 오곡과 고추 그리고 밤이며 챙기실것은 다 챙겨보내셨더라구요. 물론 간단하게 약식으로 하신것은 맞는데 나는 그 역시 전부 안하겠다고 서로 안사돈끼리 이야기가 되었는데 이렇게 또 오곡주머니가 오고했으니 또 우리의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덩치가 있는 사위는 쌀한가마니를 덥썩들고 집으로 들어옵니다. 예전에는 나도 저런것정도는 우습게 들고메고 다녔지만 이제는 나도 나이가 있는지라서.. 일단 쌀은 고맙게 잘 받기는 하겠는데 우리의 마음에는 부담으로 남았습니다. 저녁을 하면서 아들내외와 함께 식사를 하고 인사를 나누고 같이 즐거운 시간을 보냈습니다. 요즘 거의가 아파트 문화속에 살다보니 예전같이 온동네 떠나갈듯이 친구들이함께와서는 함을 팔고 하는그런 풍습이 많이 없어져서 조용하게 넘어가지만 그래도 함이 온다는것은 온동네에 이집의 처녀가 시집간다고 알리던 풍습인데 이제는 서로를 많이 배려하는것같습니다. 사위에게 가는길에 함값을 많이는 못쳐주고 그냥 한이십만원정도로 해서 봉투에 넣어줬습니다. 금액이 적은지 어떤지는 잘모르겠습니다만 그정도면 그냥 무난하게 잘 넘어간것같습니다. 그리고 과일을 명절보낸다고 아들에도 좀주고하려고 밀감하고 조금샀는데 함이 들어오면서 또 약간의 과일이 들어와서 한동안 과일걱정은 안하고 살것같습니다.
예전의 서면 태화 백화점자리입니다.
이번 딸애가 결혼하게되면 내가 큰짐을 덜것같습니다. 물론 자기가 벌어서 대학나오고 그랬지만 부모로서 딸아이의 관리가 힘이 드는편이었습니다. 직장도 자기가 구해서 잘 다녔고 부산공동어시장의 수산중매인 사무실에 6년인가 근무했고 또 돈한번 벌어볼것이라고 골프캐디한다고 새벽으로 연수받으러 다니던일 그리고 냉동창고회사 경리도 하고 이제는 식품회사의 홍보영양사로 학교같은곳에 단체 급식의 식자재납품하는회사에 식단관리같은일을 맡아서 하는가봅니다. 직업도 여러가지이지만 그래도 이직업은 결혼후에도 계속근무할수있는 그런자리라서 년봉이 크게 많지는 않지만 계속할수있다는 이점에 차도 사고 근무를 하게된직장입니다. 이제 어느덧 다 자라서 자기짝을 찾아서 훌쩍 떠나게되는데 결혼이 문제가 아니고 성격이 서로다른 남여가 30년이상 부모밑에서 자기들만의 세계를 만들고 살아간다는일이 생각만큼 그리쉽지않을것이라는 먼저살아본 부모로서 걱정입니다. 우리딸 성격이 강해서 사위를 이겨먹을려고 할것인데 큰소리 안내고 잘 살면 다행이겠습니다. 이게 딸가진 부모의 마음인가싶습니다. 일단 결혼을 하게 되면 달라지겠지만 집에서는 자기방도 잘 안치우는편이고 음식도 늘 엄마가 해주는것만 받아먹는입장에서 살다가 이제는 둘이서 음식도 만들어가면서 반찬도 만드어야하는데 고등어배나 갈라서 고등어 찌게라도 할수있을까는 의문입니다. 하긴 처음부터 살림을 배워서 시집사는 딸이 어디 많겠습니까만은 .. 집에서 귀하게 자라서 셩격도 강하고 사위도 처음에는 사랑에 눈이 멀어서 잘 받아주겠지만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그런것이 자꾸 눈에 보이게되는것인데 . 조금이라도 살림사는법을 배워가면 좋았을것을 하고 생각되는게 부모의 마음입니다. 일단 함은 들어왔고 예식치르는일만 남았습니다. 늘 하는걱정이지만 어린아이 물가에 내놓은부모의심정입니다. 아무튼 결혼해서 잘살아야할것인데하고 빌어봅니다. 어느새 설날이 저물고있습니다....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 / 진미령 내가 난생 처음 여자가 되던 날 아버지는 나에게 꽃을 안겨 주시고 어머니는 같은 여자가 되었다고 너무나 좋아하셔 그때 나는 사랑을 조금은 알게되고 어느날 남자 친구에게 전화왔네 어머니는 빨리 받으라고 하시고 아버지는 이유없이 화를 내시며 밖으로 나가셨어 그땐 나는 아버지가 정말 미웠어 내일이면 나는 시집을 간다네 어머니는 왠지 나를 바라보셔 아버지는 경사 났다면서 너무나 좋아하셔 그땐 나는 철이없이 웃고만 서 있었네 웨딩마치가 울리고 식장에 들어설때 내 손 꼭쥔 아버지 가늘게 떨고있어 난생 처음 보았네 세상에서 가장 슬픈 아버지 모습 나도 같이 주저앉아 울고 싶었어 내일이면 나는 쉬흔이라네 딸아이가 벌써 시집을 간다 우리엄마 살아계셨더라면 얼마나 기뻐할까 그때 나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는데 그 옛날 엄마 마음을 조금은 알것같아 자꾸 바라보는 나의 딸 아이 모습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거란걸 왜 진작 몰랐을까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거란걸 그래 사랑이란 바로 이런거야 그래 행복이란 바로 이런거란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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