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천만(灣)의 직업의 세계

2009. 5. 29. 19:19나의일.

 

 

 

 사람이 먹고 사는일이 참 여러가지입니다.

한편에서는 장의사는 사람이 죽어야 먹고 살고 또 한편인 산부인과에서는

사람이 태어나야 살고 또 다른 병원쪽에서는 아파야 벌어먹고 삽니다.

 

산다는 그 자체로만으로는 조금의 쌀과 또 조금의 돈만으로 살아지겠지만

나중에 늙어서 힘없을때는 편안한 노후생활을 대비하여 저축이라는것을

많이 하려고모두들 열심히 살아들갑니다...

 

저 같은 사람은 운수업을 하면서 근근이 입에 풀칠 정도는 하면서 

남에게 빌리지 않을 정도의 돈을 벌어가면서 삽니다. 

 

우리네 밥줄을 쥐고있는  명태잡는배는 이제 수리조선소에 내려옵니다.

1년동안 얼음바다위에서 수리도 못하고 응급조치만 하고 다니다가 이제 금어기에

수리조선소에 들어가서 수리하고 페인트까지 화장을하고서 내려와 .

 

우리동네앞의 감천항내를 시험 운행한다고 작은 방파제안의 바다를 힘차게 치고나가는데

이 명태를 잡는배가 북양에 나가서 명태를 잡아서 다시 싣고 들어와야

우리네 일할꺼리가 생기는것입니다.

 

                                                큰 선박의 타워 크레인의 콘트롤 박스입니다.

                                이것을 바지선에 차체로 싣고 조선소옆에가서 배로 바로 올립니다.

 

때는 토요일 오후 우리네 사무실에는 일이 없습니다.

남의 사무실에는 이번에 남대서양 아르헨티나 근처 포클랜트에서

오징어를 많이 잡아온선박 하역작업이 밀리는 바람에 자기들은 냉동오징어를 입고 작업을 하면서

우리에게는 참 돈도 않되고 어렵고 시간이 많이 걸리는 그런 참치미끼(Bait)작업을 

우리에게 용차를 주는군요... 

 

이것은 얼마나 어려운작업인가 하면은 쉬울때는 아주 일도 아닌것처럼 그냥 간단하게 끝이 나는데

이게 한번 꼬이기 시작하면 냉동창고에서 출고가 않되서 한두시간 기다리고

그것도 그런 창고를 한두군데는 다녀야 한차가 차는데 이게 잘 될때는 싣고 배가 운반선이라서

가는대로 바로 하역작업이 이루어 집니다..

 

그런데 작업이 잘 될때는 아무렇게나 하역을하고 싣고가는 배가 화물칸의 홀드가 넓은배는

큰 운반선은 얼마든지 오는대로 하역을 합니다.

이번토요일 한바리 얻어간 일은 이게 사단이 났습니다.

벌어먹고 살려니 어려운점도 많습니다.

 

베이트(오징어)를 1천상자를 싣고서 감천건너에 있는 구평모든 부두라는곳을 갔습니다.

 

왜, 모든 부두이름이 모든부두냐 하면은 ...

부산은 항구이다보니 모든 선박들은 기름을 보급받고 또 기름을 싣고 다니는 배(탱크선)가

다른 화물을실을때 선박폐유나 원유를 실고 오는배의 화물탱크를 청소를 하거나

많이남은 탱크선의 원유를 처리를 대행업체에서 해야하기에  

엘지정유의 대리점형식으로 운영하는 좀 규모가 적은 정유회사가 있는데

그 정유사가 이 부두를  만드는 자금을 모두데서 이 만든부두를 모든 부두라고 합니다..

 

이부두는 처음에는 기름배를 데기위하여 산을 깍아서 절개지를 만들고 그뒤에 수십년이 흐른후에

바다를 매립하고 산을 깍아서 지금의 멋진부두가 되었지만 예전의 부두는 정말 오기가 힘들었습니다.

 

그 동안에 세월이 변해서 이제는 큰길가에 멋진 공장을 가지고 떵떵거리는 비싼 땅이 되었습니다.

돈으로 그 못쓰는산을 깍아서 매립했더니 좋은땅이되어서 큰재산이 되었습니다.

운이 따라야 벌어지는 가 봅니다. 

 

일단 오징어는 싣고 들어온것까지는 점심시간에 들어와서 괜찮았습니다.

와서 보니 내 앞에 나만큼 큰차가 2대나 떡 버티고 아직 작업도 하지않고요.

그것을 받아싣는 배가 낚시참치(마구로)를 잡는작업선 100톤이 조금 넘는 아주 작은배인데

어창의 홀드가 사방이 1m20cm정도 되겠습니다.

 

우리가 파렛트에 오징어를 올려쌓아서 실고 갔는데 그것이 딱 한파렛트를 지게차로 내려서

크레인으로 떠 넣으면 하나가 올라갔다 내려갔다 하는데 이것은 한차 하역시간이

실로 한시간 반씩 걸립니다.

 

이제 작업을 빨리 마쳐봐야 더 할것도 없지만 이일은 제가 받는 페이(운임)가

너무 형편없습니다..

 

우리것이 아니다보니 어디 하소연할곳도 없고 그냥 무작정 이게 순탄하게 잘 들어가기만 빕니다.

 결국 시간은많고 어디 갈수도 없고 주위를 한번 둘러봅니다.

 

큰 빠지선을 접안시켜놓고 선박 윈치크레인콘트롤을 싣는 작업을 하는것을 구경합니다.

아주 큰 장재물로서 붐대를 분해해서 싣는것이 이정도입니다.

처음트랙터 기사는 배로 건너가는 바지선의 철판을 아무렇지않게 쉽게 넘어가서

다음차 주차할 공간을 넓게 만들어줬는데 두번째 기사는 경험이 부족한지 쩔쩔헤메고 운전을 합니다.

 

이 크레인타워박스가 넘어질까봐 땀을 뻘뻘흘리는데 내가 봐도 안타깝습니다.

그 다음에는 빔대를 실은 트랙터가 두대가 들어서는데 순식간에 이런 위험한 작업을

아주 쉽게 하면서 바지선원들은 나이싱(결박작업)을 합니다. 

배가 바다에 멀리나가면 아무래도 흔들리니 선체와 적재물 그리고 트랙터를 큰체인와이어로 묶습니다.

 

바지선 옆에는 북한 선박이 바짝붙어있는데 부두 청원경찰이 선박의 양쪽 끝에서 경비를 합니다.

북한선원들이 육지에 올라올까봐 경계를 철처히 합니다.

이사람들은 대한민국의 땅을 밟을수가 없습니다.

 

                선명인 단결봉이 선명하게 보입니다. 배위에서 한명도 내려올수 없습니다.우리와 국교가 수립되지않아서이지요.

                   가까이 가서 찍으면 기분나빠할까봐 좀 떨어져서 찍었는데 못먹고 궁핍한지 얼굴이 쌔까맣습니다.

 

이 사진을 찍은곳은 모든석유가 만든곳 바로 옆인데 그옆의 부두는

또 제일제당에서 부두건설자금을 데서  만든 부두 입니다..

그래서 이름도 제일제당부두입니다.

 

정문은 같이 쓰지만 금속 (아연,구리,알미늄)을 선적과 하역을 하기위해서 만든 금속하역전용부두입니다.

영국의 런던의 금속시장의 하치장을 목적으로 제일제당에서 싱가폴에있는 아시아권역의 보관물류창고와

하치장그리고 큰배를 델수 있는 부두가 필요했기에 만들었는데 이것도 물건너갔습니다..

아마 국제 물류저장창고겸부두 입찰에 밀린것같습니다.

 

자금은 북한 배들이 북한에서오는 물품을 실어나르는그런 부두가 되었습니다.

그러나 부두라는것이 바다에 떠다니는 배는 모두 아무데나 될수있습니다.

고기배도 선석이 없으면 이런부두에도 접안을 시킵니다.

 

부산에 있지만 부산것이 아닌것이 항만시설입니다.

여기 부산서 벌어서 모두 서울로 돈을 다 올립니다.

해양수산부 항만청소속이다보니 말이지요.

그러기에 재주는 곰이 넘고 돈은 뙤넘이 챙긴다는 소리가 딱맞아요...

 

모든부산에서 바다는 다 오염시키고 친수공간 다 빼았아가버리고 돈은 모두 서울로갑니다.

힘없는 사람들이 모여사는 동네에사는 비애입니다.

 

북한배의 선원들이 배위에서 후미에서 고장난모터를 뜯어가면서 여러명이 나와있는데

이 모습을 보니 중국사람보다도 못한 복장에 얼굴이 아주 해풍에 타서 그런지 쌔까맣습니다.

아무래도 영양가가 없는 음식을 먹고 하니 또 옷같은것도 품질을 보면 이제 중국사람들은

많이 세련되어서 좋아졌는데 북한사람들은 중국사람보다 더합니다.

 

옆에있던 우리 동료가 이야기합니다.

저 배를 타고 우리부산에 오는 저 북한선원들은 사상이 아주 열성공산당원들만이

이런외국나가는 배를 탈수 있다고 합니다.

 

옆의 동료 아버지는 고향이 청진이라고 하던것같은데

우리아버지는 신의주옆의 선천이니 이배의 모항지인 남포가 가깝겠습니다.

살아있으니 이북사람을 북에 가지않고도 잘 볼수 있는세월이 옵니다..

 

우리 아버지도 살아계셨으면..하는생각이 듭니다.

 

                                      바로 그옆이 한진 구평부두였습니다...지금은 모두 신항만으로 이사갔습니다.

 

아직도 내트럭의 오징어 베이트는 풀려면 멀었습니다.

그 작은 어창구멍으로 한파렛트넣고 그것을 다 어창에 적재하면 또 한파렛트 넣고 하는 완전히

손으로 하는 수작업이고 참치를 넣는 냉동실의 온도가 너무 추워서 노조원(인부)이

조금만 일하면 올라와서 춥다고 담배피우러 나옵니다. 

 

이런실정이다보니 이제 일찍가는것은 포기했습니다.

모든 직업에도 프로정신이 있어야 하는데 노동일이라는것이 나혼자만 잘한다고

다 되는것이 아니고 모두가 박자가 맞아질때 일의 능률과 속도가 나는것입니다.

 

한명이 춥다고 나오니 다른사람들도 다 따라나옵니다.

하긴 어창의 온도가 영하 한 20도정도 되니 춥기는 하지요.

그래도 돈은 많이 주지않습니다.

 

나는 또 무한정 기다려야 되니 부두를 돌아봅니다.

잠시 눈을 돌려서 한진부두를 봅니다.

컨테이너를 싣고 올리고하는 켄츄리 크레인이 녹이 피어있는 모습입니다.

 

왠일인고 하고 살펴보니 일을 하는배도 없고 사람도 없습니다..

이 큰부두와 장비를 모두 버리고 진해쪽 신항만으로 2달전에 모두 이사를 갔다고 합니다.  

 

아니 , 이부두를 컨테이너 작업전용부두로 만들기위해서 엄청난돈을 들여서 만들고

거기다가 켄츄리크레인이 5기에 그 컨테이너를 달고 다니던 전용 트랙터도 모두 버리고

하치장에 크레인까지 모두 두고 사람만 쏙 가버렸다는이야기입니다.

 

이 한진이란 회사가 돈이 많은줄은 알지만 이 켄츄리 크레인이 한대값이면 웬만한

작은 공장 한공장을 지을만큼의 돈이 들어가는데 트랙터와 하치장 크레인까지 모두 버리고 갔으니..

 

이 많은 돈은 주식투자를 한사람들이 모두 피박쓰는겁니다.

주식 유상증자해서 돈을 또 만들면 되니 말이지요..

알고도 속고 모르고도 속고 이런 정신으로 사업을 해도 돈이 벌어지니 참...

 

이것을 가져가지는 못하면 다른곳에 활용을 하거나 외국에 수출하거나 해야지  

세상에 이곳에 버려진 돈이 수백억원일진대  저는 아까워서 꿈도못꾸겠습니다. 

세상에 ...세상에...

 

하긴 한진이란 회사가 크기는 하지요...

세계적인 물류운송회사이다보니 이정도는 가볍게 보는것같습니다.

저 넓은 마당에 쓰지않고 그냥 서 있는 이 기계와장비를 보는 내마음이 아팠습니다.

 

이제 컨테이는모두 신항만으로 가버려서 일반 러시아 어선이나 외국의 선박을 

한진부두를 사용하게되었습니다.

주위의 경비상태가 좋은곳이다보니...

 

저는 어려서 너무 가난을 경험하다보니 이런 아까운것을 보면 참 마음이 쓰라립니다.

저 비싼 켄츄리크래인을 고철로 팔수는 없는일아닙니까...

우리나라 부자인것 또 절실히 느낍니다.

 

이것을 모두 해체할려면 이제 고물상도 어엿한 큰 금속철재상이 되겠습니다.

일단 세월이 가면 무엇이든 해결이 납니다.

나만 바빠서 혼자 촐랑거리지 되는것은 내가 없어도 저절로 하차가 됩니다.

 

우리동네 감천만이 이리 많이 변할줄 우리 학교 다닐때는 생각도 않해봤습니다.

그때 우리 아버지가 바닷가에 논이라도 몇평사두시기만 했어도 내인생이 바뀌었을것인데......  

  

                              김해 낙원공원묘지입니다. ...망자들이 누워서 편안한 휴식을 취하고 있습니다.

 

요즘 시대가 인구가 자꾸 줄어드는시대입니다.

아이들의 교육비가 너무 비싸서 신혼부부가 아이를 가지지 않을려고 한답니다.

이러다보니 연세드신분들은 자꾸 하늘나라로 가시는데 아이들의 울음소리는 듣기가 귀합니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고 저도 친구 따라 친구의 모친이 누워계시는곳을

산책삼아서 맑은 공기도 마실겸한번 같이 찾아봤습니다.

저도 요즘 일이 없는날이 많이 생기는것같 습니다.

 

그래서 친구는 어머니 찾아가고 나는 근처를 둘러봅니다.

이곳은 살아서도 죽어서도 돈입니다.

 

망자가 누워계시는 이곳은 김해 이북면의 높은 산비탈인데  한분이 누우실려면

3평이 있어야 된다고 합니다.

분양비는 따로 평당 몇백만원하는가봅니다.

 

일단 한번 들어오시면 돈이 있는집안은 좀 크게 5평을 부부간에 10평으로 하고

좀 그런집안은 그냥 3평씩 분양을 받아서 하는데 한참 또 산을 깍아서 묘터를 만들고 있습니다.

 

일단 15년계약이이루어지는데 1년에 사용관리비가 3평짜리가 7만원정도 되는것같습니다.

그뒤에 돈이 않들어오면 이제는 공고붙이고 무연고 파묘를 해서 새손님받는다고 합니다.

참 죽어서도 갈곳이 없어서 걱정입니다...

 

이게 깨끗하니 보기는 좋습니다만...

일단 이곳에 오시면 친구는 많아서 좋겠습니다.

살아서도 아파트 문화인데 이제는 죽어서도 아파트문화이고 후손들이 관리비 못내면

그곳에서도 퇴출이니 세상에 살았을때 왜 더 벌려고 않설치겠습니까...

 

나쁜짓이든 착한짓이든 무조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말고 돈을 벌어야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는것같습니다... 

나죽고 나면 후손들이 챙겨나 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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