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주저 앉은 첫 사랑.

짬스탑 2008. 5. 4. 09:47

이 글은 내가 존경하는 나비드님이 저에게 주신주옥같은글입니다.
정말 대단하시고 제가 꼭 찾아뵙고 만나야 하는 이유가 들어있는 그런글이지요..
여러분들도 이런 가슴시린 사랑을 정말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주저 앉은 첫 사랑



하도 오래되어서 기억이 가물거리지만 그래도 잊혀지지 않는 여름날의 이야기를 하려 합니다. 대학을 뺑이치게 돈벌어가며 고생 고생하다 졸업을 하는 바람에 흔해 빠진 미팅이나 소개팅 한번 못하고 졸업을 하였었습니다.


졸업을 하고 어렵사리 취업을 하여 첫출근 하는날 어머니 쌈지돈으로 마춰주신 양복을 걸쳐입고 이리 돌아보고 저리 돌아 보시던 내어머니 버스 타는데 까지 따라 오셔서 잘하고 오라고 손흔들어 주시던 그날이 다시금 그리워 집니다.


회사에 출근하여 사장님께 신입인사 하여야 한다기에 약간 겁먹고 상기된 얼굴로 사장실로올라갔었는데 그곳에서 한 여인에게 그만 정신을 놓고 말았습니다. 얼마나 허옇고 아름다운지 그자체가 환상이었지요.


정신을 빼앗겨 버린 나는 어처구니없게 그녀를 쳐다보다 비서실 전화줄에 걸려 넘어지고 말았습니다. 가뜩이나 큰 등치가 넘어지는 바람에 내 어머니의 피와 땀으로 맞춰주신 양복이 걸려 찌져지고 말았던 것이었습니다. 평생 처음 입은 내 양복을 말입니다.


창피하고 부끄러워 어떻해 신입인사를 했는지도 모르게 나는 그렇게 사회생활을 시작하였고 그후 그녀와 우연히 버스를 같이 탄 계기로 그토록 원하던 그녀와 나는 한동안 테이트를 하게되어 그렇게 우리는 연인으로 변하여 갔습니다.


내 첫사랑은 이렇게 시작되었고 어려운 환경이지만 그래도 작은 행복에 난 즐거워하며 언제나 먼훗날을 꿈을 꾸며 나만의 사랑을 가슴에 담기 시작했었던 것 같았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장사를 하시던 어머니께서 시장 다녀오시다가 넘어져 병원에 입원하게 되었고 병원비 때문에 가불이라는 것을 처음으로 하게 되었습니다.


병원에서 만난 지금의 우리 매제도 처음 보았고 내동생이 결혼을 하고 싶어한다는 것도 알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 아버지 일찍 떠나 보내시고 어린 사남매를 키우시다보니 힘드신지는 알고 있었지만 늘 우리에게는 내색하지 않던 내어머니였지만 그날따라 약한 모습도 처음 보게 되었습니다.


어머니께서는 사위될 매제가 마음에 들어하시며 여동생을 혼인시켜 주고싶었지만 아무것도 준비가 되지 않은 어머니는 병실에서도 긴 한숨만 쉬시며 미안해 하셨고 그런 엄마에게 죄송했던 여동생은 나중에 자기가 돈벌어 가면 된다고 걱정하지 말라고 말은 하지만 얼굴에는 섭섭함이 묻어 있었습니다.


매제는 그래도 양친부모도 계시고 작은 집이라도 한채 장만하여 올 수있다고 하니 더욱 더 어머니는 혼수 문제로 여기저기 돈을 마련해 보시려고 전화를 하시며 걱정의 나날을 보내는 것을 보았지만 난 아무 것도 힘이 되지 못하는 내가 미웠습니다.


그러던 어느날 회사에서 중동에 파견갈 지원 사원을 뽑는다며 부서별로 공문이내려왔고 봉급도 현 봉급에 몇곱절 더 받을 수 있다는 것에 나는 이기회를 놓치고 싶지않아 지원을하고 말았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나만큼이나 어려웠던 사람이 많았던 시절이라 너도 나도 지원을 하여 경쟁율이 치열하였고 또 다른 면접을 치루기도 하였습니다.


그래도 나는 평생을 이른새벽기도 하시는 내어머니의 기도 덕분에 덩치큰 내가선택되어 가게 되었습니다. 3명 파견 가는데 340명이나 지원을 했다는 후문을 들으며....


기쁨마음도 잠시 열사의 나라에서 내가 사랑하는 모든 것들을 뒤로 하고 가야한다는 현실이 닥쳐왔던 것입니다. 내가 처음으로 사랑했던 그녀를 뒤로하고 가야한다는 것이 나를 슬프게하고 그녀를 아프게 하고 말았습니다.


떠나기 3일전 어머니께 말씀 드렸을 때 죽어도 안된다고 통곡하시며 울부짖던 그날이 오늘따라 새롭고 내 사랑하는 사람이 떠나면 끝장이라고 다시는 자기 생각하지도 편지도 하지 말라고 울먹인다
부모님 성황에 시집가게 될지도 모른다며 비오는 날 슬피우는 그녀를 뒤로하고 독하고 인정없는 나는 떠나고 말았습니다.


공항 한편에서 한없이 흐르는 그녀의 눈물을 보았고 기다려 달라고 말도 차마 못하고 비행기안에서 흐느끼며 울었던 그시절이 오늘 따라 내 가슴을 아리게 하고 맙니다.


중동에서 근무하는 2년여동안 편지로 그녀와 오갔지만 그녀는 결국 부모님의 성화에 못이겨 중매로 결혼을 하고 말았던 것이다 몇개월 동안 억지 술을 제조해서 침대밑에 앉아 내 한많은 슬픔을 달래며 퍼 마시던 그술이 그립고 아쉬워 아직까지도 내 닉은 아랍어로 포도주라는 "나비드"라 부릅니다.


세월은 덧없어 5년이라는 세월을 중동에서 독하게 생활하고 귀국하여 지금의 아내를 선배 중매로 만나 결혼을 하여 고생만 하시던 내어머니 평생의 소원이시던 작지만 내집에 입주한 그날밤 어머니는 지나온 한많은 세월의 서러움을 토해내며 밤새도록 우시며 지새웠고 저도 무척이나 많이 울었던것 같습니다.


몇해 지나 처음으로 어머니 모시고 아내와 여름 휴가를 가게되어 동해안 백도라는 곳으로 휴가를 떠났습니다.


그 당시 대부분이 민박을 많이들 해서 나도 방하나를 빌려 짐을 풀고 있는데 어디서 많이 본듯한 부인이 한손에 풀을 들고 한손에는 이쁜아이를 붙잡고 오고 있었습니다.


아이가 아직없던 나는 부러운 눈으로 그 부인을 쳐다보는데 부인은 나를 보자 그자리에 퍽석 주저않고 말았습니다.


오 하나님! 세상에 그 부인은 내 첫사랑이자 가슴속에 사랑인 그녀 였던 것입니다.


옆에서 보고 계시던 어머니도 깜짝 놀라 하시며 내 아내가 눈치 못채게 그녀를 부축여 밖으로 데리고 가는 것을 물끄럼이 쳐다보다 그만 어이없는 내눈물은 내 뺨을 타고 한없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그렇게 만났고 그렇게 또다시 헤어졌습니다.
그날 어머니는 해수욕장이 마음에 안든다고 하시며 다른데로 가자고 서둘러 짐을 챙겨 다른데로 옮겼고 그렇게 저는 또 그녀를 떠나고 말았습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아내는 어머니가 못마땅한 표정이었지만 우리는 그렇게 그곳을 황급히 빠져 나오고 말았습니다.


한마디도 못해보고... 어떻해 지냈냐고 안부한번 물어보지 못하고... 그리웠다고, 보고싶었다고 말하지 못하고.... 어디사냐고, 아이는 몇살이냐고 물어보지도 못하고...


이렇게 내 여름날의 첫휴가는 아픔과 슬픔과 서러움으로 시작 되었던 것 같습니다.


서형!

제가 살아 온 모습이나 서형이 지나온 세월은 종이 한장에 불과한 것을 가끔 잊고 살기도 합니다.

이렇게 누구에게 제 속마음을 털어놓고 나니 날은 궂져도 마음은 따뜻해 짐을 느끼는 하루가 될 것 같습니다.


오늘도 평온하시고 언제나 소중한 가족을 생각하시고 무사고 운전 하시길 기도 하겠습니다.

그리고 메일 감사드립니다


동선동에서 정철이가 드립니다.

어제는 친구 상가집에 다녀왔습니다







- 타이타닉-- 케니 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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