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딸애 결혼식을 마치고서.

짬스탑 2011. 2. 26. 11:19

신랑의 체력점검을 하고있는 모습니다. 



이번에 딸애결혼식을 치른지도 어느덧 일주일이되었습니다.
솔직히 혼례라는대사에 정신이 없다보니 아이들신혼여행 갔는지도 모르겠고 
어디를 어떻게 갔는지 오늘밤이 되어봐야알수있겠습니다.
그동안에 나와 우리집사람은 손님치르기와 끝나자마자 바로 직장에 복귀해서 
일한다고 정신못차리고 일만하다가 감기몸살이 나버렸습니다.
두사람다 감기몸살로 콜록콜록하면서 기침에 목이 따깝고 눈이 튀어나올려고하고
흐르는콧물에 머리는띵하고 정신을 못차릴만큼 온몸이 쑤시고아팠습니다.
인사부터 내가 먼저 올려야하는건데 몸이 따르지않아결국 늦게오늘에야 이렇게
인사올리게됨을 용서하시고 예쁘게 봐주시면 고맙겠습니다.
그러면서 동네의원에가서 두번이나 진료를 했는데도 별반 차도가없어서 
집사람은 일을 가고 오늘도 나혼자 동네이비인후과를 찾아서 주사한대맞고옵니다.
다른분 말로는 집에 큰일치른다고 감기몸살하는거랍니다..
일단 어찌 결혼식이 잘되었는지도 모르겠고 정신없이 일하고 뒷정리하고 하다보니 
일주일이란시간이 정말 빨리 가버렸습니다.
조금전에 친구에게서 이바지떡을 언제가져다줄까?...하고? 전화가왔습니다.
그래서 알아보니 오늘 낮에 신혼여행갔던 아이들이 돌아온다고합니다.
그럼 오늘 시가집을 가느냐하고 물었더니 친구는 보통 신랑이 신부집에서 
하룻밤을 자고 간다고하는군요..
그럼 이바지떡은 오늘 필요한것이 아니고 내일필요한것인데 내가 미리 주문을 했으니 
전화가 온것입니다..
솔직히 어릴때부터 독단적으로 살아온제가 이런 예의범절에는 좀 떨어집니다.
집에 어른이 계시면 잘알려주실것인데 어른도 안계시지요.
요즘은 아파트문화가 문을 꼭꼭닫고사는 시절이라서 앞집 옆집에도 물어볼데나 
자문을 구할대도없는 현실입니다.
일단 그것은 친구덕에 하루더 밀어놓으면되고 그동안 혼사치른다고 나만 바빳지 
다른분들은 이놈이 결혼식치르고나니 이제 더 큰행사는 끝났다고 그러는지
영 인사가 없네하시는분이 계실것입니다.

어찌 제가 더 새신랑같습니다. 

이번 결혼식에 참석해서 축하를 해주신분들 참석치 못하시고 마음으로 축하해주신분들 모든분들에게 제가 고맙다는 인사를 이제 정신차려서 올리게됨을 용서하시길바랍니다. 제 직장근처에 있는 운수회사 사무실에는 떡과 음료수를 새로해서 일일이 다돌렸습니다. 이런운수업하는곳에 30년넘게 있었으니 누구누구라고 이름만 데면다 아는 현실인데 잔치하고나서 그냥 뷔페만 하고 마는것은 너무나 실례같아서 제마음을 조금담아서 각사무실마다 인사를 올렸습니다. 우리딸 30년이나 고이 길러서 없는 살림에 이것저것해서 시집보내고나니 물밑이 훤하고 결혼한날 그날밤에 딸애 방문앞에서 안을 쳐다보니 뭔가가 서운한것이 가슴을 치밀어올라오는것같고 자다가 일어나서 다시한번가보고 그랬습니다. 말썽을 피울때는 정말 미웠다가 또 좋은일이 생기면 같이 즐거워했던 그 지난세월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는데 아! 이런게 딸을 보내는 아버지의 마음이구나 싶기도했습니다. 그래도 아무탈없이 결혼까지 잘 마치고 신혼여행을 갔다가 오늘 저녁에 오는데 이제부터는 하나의 독립된가정을 꾸미고 잘살아주기를 아버지는 바라고있습니다. 자기들만의보금자리도 우리집과 시댁의 중간정도에 얻어서 자기들 편하게 살수있도록 예쁘게꾸며서 준비해두었고 서로가 자주 찾아서 불편하지않을정도의 거리에 사니 이제는 자기들도 살아보면서 부모의 마을을 알아갈것입니다. 솔직히 나이도어린 저만 자식을 한명도 아니고 둘을 1년1개월만에 대사를 치러서 정말 짧은기간에 두번씩이나 찾아주신분들에게 미안한감도 있습니다. 청첩장을 100여장 받았는데 솔직히1년전에 아들을 혼례를 치러다보니 어디 줄곳이 마땅찮고 미안해서 선뜻 청첩장을 전해드리기가 내손이 미안했습니다. 그러나 저의 뜻에 의한것은 아니고 어쩌다보니 그렇게 되었습니다. 이제는 많이 받은 제가 저의 대사에 참석해주신모든분들을 일일이 행사를 챙기고 꼭 그런일에 축하해주러 많이 다니면서 그 은혜에 보답할차례입니다.. 아직 결혼애들이 신혼여행에서 돌아오지는 않았지만 나중에라도 꼭 인사를 시키도록 해야겠습니다. 저 역시 어려서부터 살림을 독립해서 살다보니 제주위의 분들보다는 이런혼례쪽은 한7~8년 앞서갑니다. 제가 18살때부터 집사람과 살림을 차려서 살았으니 말입니다. 요즘 제 주위의 친구들은 다들 대학등록금때문에 다들 고민을 하고그러는데 나는 그게 강건너 불구경같이 느껴졌으니 말입니다. 나도 아이들이 그만할때가 아마 한10여년전인것같은데 그때 정말 어렵게 쪼들리면서 살았습니다. 돈을 조금 벌어서 한천만원 모아놓으면 입학할때 다 써버리고 또 6개월정도 또 한천만원정도 모아놓으면 또 등록금으로 다가가버리고 이것참 미치겠더라구요, 저축할돈이 없는겁니다. 그렇게 힘들게 아이들 대학을 다 보내고나니 졸업과 동시에 돈이 모아지더군요. 아이들이 학교에 다니면 돈을 모을수가 없습니다. 그후로도 부지런히 해서 모아서 집도 큰것으로 옮겼고 또 모아서 아들집까지 장만하고 그리고 장가를 보내고 또 부지런히 모아서 딸애 결혼까지 마쳤으니 이제는 저도 조금 쉬어야하지않겠습니까...... 이 모든 공이 우리집사람이 만들어낸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볼것없고 가진것없는 저와 살림을 차리고 내가 병역의무를 한다고 방위를 할때부터 그때부터 어렵게 화장품외판원에 임신중에도 신발공장에 근무하고 그리고 끊임없는 노력으로 지금까지 와준것으로 항상 내가 잊지않고 머리속에 새겨서 그 고마움을 보답하려고 저역시 노력하면서 살아갑니다.. 다시한번 이번 딸애 결혼식을 축하해주신 모든분들에게 큰절을 올립니다. 감사드립니다...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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