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고향 좌천동에 밤시간대에 들러봤습니다.
이동네의 명물 동굴집을 찾기위해서 말이지요.
그런데 동굴집은 모두 아파트 공사로 재개발로 모두 없어지고
그자리에 많았던 자개가게도 거의 없어졌습니다.
그나마 하나 남은 동굴마져도 1년전에 수정산 터널때문에 세멘트로 메꿔지고
동굴집이 모두 사라지게되어서 가슴이 아팠습니다.
일신 여학교를 같이 세우고 우리나라 사회교육에 큰힘이 되신
왕길지선교사님의 기념관입니다..
금성중학교 바로 밑에 있습니다.
엥겔 선교사는 1864년 10월 독일에서 출생하였다.
1900년 10월 호주 장로교회 선교사로 파송을 받고 왔던 엥겔(G. Engel, 한국명 왕길지)
선교사부부는 호주 장로교 해외 선교부 실행위원들의 환송을 받으면서
부인과 함께 부산에 도착을 했다.
엥겔 선교사는 1864년 10월 독일에서 출생하였다.
, 스위스 바젤에서 미술과 신학을 연구한 후 영국에 유학하여
에딘버러에서 연구생활을 하다가 1893년 인도 교육선교사로 파송을 받았다.
가족과 함께 호주로 이민갔다가 한국 교육선교사로 나오게 됐다.
엥겔 선교사는 일신여학교 교실을 센터로 정하고 매년 농한기를 만나면
부산뿐만 아니라 경남 일대 농촌교회 지도자들을 모아 놓고 사경회와 달성경학교를 운영했다.
당시는 철저하게 유교 문화권에 속해 있던 때여서 남자는 남자 선교사들이 맡아서 교육을 시켰으며,
여자는 맨지즈, 페리, 무어, 여기에 엥겔 부인도 참여를 했다.
그런데 그렇게 열심히 일하던 엥겔 선교사 부인이
1906년, 과로와 함께 밀려 오는 알 수 없는 병에 그만 사망하고 말았다.
부산에 있는 여자 선교사들에게는 큰 충격이었다.
엥겔 선교사는 멘지스가 설립했던 일신여학교 제2대 교장직으로 취임을 하였다.
그러나 혼자 생활할 수 없었던 엥겔은 일시 귀국하여 한국 선교상황을 보고하고
그곳에서 부라운(A.Browon)을 만나 재혼하여 1907년 다시 부산으로 부인과 함께 부임했다.
엥겔 선교사는 어학에 재간이 있어서 헬라어, 히브리어 교수로
부산과 평양을 오가면서 목회자들을 양성을 했으며,
이 와 함께 숭실대학에서도 헬라어와 히브리어를 강의하였다.
그러나 1937년 정년이 넘는 73세에 두 학교와 호주 선교사를 사임하고 귀국했다.
그러나 그가 총회에 공헌한 일이 하도 많아 1913 년 9월 서울 소안동교회(현 안동교회)에서
모인 조선예수교장로회 총회 제1대 총회장으로 선임됐다.
물론 많은 선배들이 있었지만 선배들을 재치고 총회장이 됐다는 것은
그에게 호주 선교 사로서는 처음이자 마지막이었다.
그후 엥겔 선교사는 노후를 정든 고향에서 그래도 잊을수 없는
제2의 고향 하늘을 바라보면서 일본이 그 전쟁에서 패하고
하루속히 조선땅이 해방되기를
간절히 기도하다가 1939년 5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멜보른에서 생을 마감했다.
야후블로그 로뎀나무에서 발췌..
http://kr.blog.yahoo.com/lodemtrees/30768
자기를 잘 자라 크게 해준 병원을 만드신분의 기념관 앞에서 포즈를 취한 친구..
엥겔스 메모리얼 홀의 정문입니다..
한국의 이름으로 왕길지라는 선교사의 헌신적인 노력으로
1930년대 일제치하에서 신여성교육(일신 여학교)과 산부인과 병원을 운영하면서
우리나라에 지대한 공을 남겼던 엥겔스 선교사의 기념홀 어릴때는 무심코 지나다녔습니다.
정공단입니다.
부산진 첨사 정발장군의 위패를 모신 사당으로 임진왜란때의 명장으로
부산진 앞바다를 책임지는 자리에서 왜군에게 엄청난타격을 주신우리의 선조이시고
이곳은 예전의 부산진 성이기도 합니다.
조선시대에는 바로 이 성앞에까지 바다였습니다.
지금의 자성대는 망루가 있는 섬이었고요..
지금 부산진시장 그 근처는 모두 바다를 매립한 곳입니다..
지금은 시간이 밤 10시가 넘어서 입장을 못합니다.
친구와 정공단 계단에서 고향의 정공단앞에서 사진을 한번 찍어봅니다.
내친구 이 병원에서 출생이라고 기념사진을 찍어달라고 합니다.
이곳은 일신 산부인과 본관건물로 그당시 1960년대에산부인과에서
생산되었다면 엄청나게 재수좋게나 부자집에서 태어났다고 봐야합니다.
일신산부인과 옛본관 건물입니다.
예전에 이곳은 그냥 예쁜마당이 있었는데 말이지요.
그냥 기억속에서만 존재하는것같습니다.
일신 산부인과 의 전신인 일신기독교병원의 신본관입니다.
산쪽의 본관 옛건물은 이제 그 형체가 다 변해서 찾을길이 없고
그 앞의 신관이 본건물이 되었습니다.
이게 1970년대의 범일동 데레사 여고의 정문이었습니다.
지금은 정문이 성당쪽으로 우측으로 이전해서 옛영화는 찾을길이 없습니다.
예전의 삼일극장과 제일은행인가가 좌측에 자리잡고 있었는데
지금은 모두 철거되고 부산진시장건너가는 철길 건널목은
지하도로로 만들어져서 또 하나의 추억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깊은밤 11시에 범일동 육교앞에서 초등동창들이
데레사 여고앞 큰길에서 사진을 한장 남겼습니다.
야간모드를 삼각대 없이 찍으니 약간 흔들려 사진이 엉망입니다.
영화 "친구"에도 나왔던 그 추억의 삼성극장입니다.
이제는 영화 상영은 하지않고 도로가확장되는데 보상이 해결되지않아서
흉물스럽게 방치되어서 그냥 세월만 기다리고 서있습니다.
쌍동이같이 옆에 서있던 삼일극장은 도로에 편입되어서 기억속에 사라졌습니다.
우리의 기억도 사라져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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