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이 오는 바닷가에서 ...
봄이 오는 송도 바닷가에서...
내가 게을러서 글도 잘안써지고 그동안 명태가 들어온다고 그것 작업한다고
많이 바빠서 블로그 관리가 엉망이었습니다.
아들을 결혼시키고 또 운수노동이라는 특수성과 글재주없는 까닭에 자주 오시는 님들에게
큰실례를 범하고 살고 있습니다.
이곳 감천 바닷가에도 봄이 왔건만......
온산에 진달래피고 벚나무는 가지마다 눈처럼꽃송이를 맺고 활짝피었습니다.
올해 겨울에는 근해에 생선이 영 어황이 시원찮고해서 고등어나 생물 생선이 거의 나지않았습니다.
부산의 공동어시장에서 잡히는 생선이 전국의 생고등어가격을 좌지우지하는데
이번겨울들어서 유래없는 불황으로 고등어 잡는 어선들이 거의 기름값도 못할만큼의
고등어를 잡는바람에 그 곳에서 생선을 실어서 운반하던 나의 어릴때 같이 운전하던친구들이
두달가까이 개점휴업상태라고합니다.
원체 고기가 적게잡히다보니 실어나를 물량이 없어서
고기싣는차들이 다른것은 별로 실어본 경험도 없고 또 있다고 한들 생선을 실던 기사가
농산물을 실으면 운임단가가 자기 입맛에 맛지도 않을뿐더러 기름값이 비싸서
경비지출이 많이 나고 일감도 적고 몇일만에 겨우 입에 풀칠할만큼의 일을 하면서
근 지금까지 3개월이 넘게 바다만 바라보고 있다고 합니다.
이친구들은 심수봉이 노래같이 언제나 찾아오는 부두의 이별을 보면서 삽니다.
매일 들어오는 선망(船罔)배들이 생선을 얼마나 잡아오는가에 온신경이 다 그리쏠려있습니다.
그리고 매일 바다뉴스만 듣고 살아갑니다.
내가 용왕도 아니고 바다속의 어황(魚況)을 어찌 알겠습니까만...
다만 그곳에 오래 종사해봐서 아는데 옛날에는 음력 2월은 샛바람이 많이 불어서 갯가에는
양식이나 모든 조건이 어려워서 제사도 안지낸다고 하는달입니다.
이런달에 음력2월에 딸기가 많이 나오는달입니다.
양력으로는 약 4월쯤 됩니다....
이번에 서해안의 백령도에 군함사건도 그렇고요 ..
음력2월은 바닷가에서는 참으로 견디기 힘든 어려운달입니다.
송도 거북섬에서 물이 최고조로 많이 빠지는봄날.
사람 사는게 다 그런가봅니다..
한달이 크면 한달이 적고 내가 많이 벌면 친구들이 적게 벌고 친구들이 많이 벌면
내가 적게 벌고 이런 일에 몇십년을 버텨온 노하우로 버티고 살아가지만
크는아이들과 생활비 교육비등에 내가 아이를 먼저 가지고 살다보니
벌써 먼저 겪은나로서는 아득한 남의 소리로만 들립니다.
내가 생물차를 할때에는 집사람이 정말 딸기 좋아했습니다.
지금같이 딸기가 흔할때도 정말 딸기를 한번 제대로 못사줬습니다.
딸기 값이 원체 비샀고 하우스에서 재배를 하다보니 그림의 떡이었는데
우리집사람이 그리 좋아하는 딸기가 그때돈이나 지금돈이나 약 만원이면 뒤집어쓸것인데
그때는 내가 정신을 못차려서 그랬는지 화투도 치고 해서 정말 돈이 너무 딸려서
제 소원이 살면서 돈 걱정없이 한번 살아보는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니 돈도 없고 아이들은 커가고 집에 생활비에 쪼들려서
집사람을 직장에 내보내야하는 지경에 이러럿지만 저는 집사람을 돈벌러 보내지 않았습니다.
남자가 얼마나 못나면 여자를 호강을 못시킬지언정 돈벌어오라고 나몰기까지 하겠습니까..
그러나 지금은 시절도 바뀌고 집사람도 아이들이 다 크고나니 자기 자신의 소일꺼리가 없으니
너무 심하게 스트레스를 받는것같았고 뭔가에 열중할 필요성도 있어서
주위 친구의 도움으로 일을 하게 시작된것이 솔직히 지금은 우리 가정에 엄청난 큰힘이 됩니다.
집사람은 힘이 들겠지만 자기가 매진할 그런 부분이 생기는것이 좋고 또 사명감이라든지
일을 할수 있다는 자신을 드러낼수 있는 능력같은것이 살아가는데 큰 원동력이 되는것같습니다.
아주 무거운 쇠줄을 메고 가는 러시아 선원들 노예시장을 보는것같습니다.
우리집사람은 처음에 까르푸라는 매장에서 한동안 오래일을 해서 까르푸 한국지사장의 상장도 타고
엄청나게 열심히 일을 했는데 우연찮게 또 다른 직장을 연결되는바람에 지게차부품조림공장으로 가서
지금도 엄청나게 많은 시간을 서서 힘들게 일하면서 가계에 도움을 주고 있습니다.
어떤달에는 저보다 더 벌어오는달도 있습니다.
저의 일감이 원래 들쑥 날쑥하는 자영업이고 집사람은 어쩌다가 보너스와
겹치면 저보다 많은 급료를 받을때도 있습니다.
이렇게 해서 번돈으로 아들 결혼도 시키고 집도 사고해서 아들에게 물려주고 말입니다.
이리 재미있게 살게된것도 오로지 우리집사람의 덕인것같아요..
이번친목계에가서 친구들의 근황과 사정을 들어보니
내가 한10여년전에 겪었던 일을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것같았습니다.
10여년전에 저역시 아이들이 학비에 학원비에 정말 미칠지경이었습니다.
가장으로서 책임을 못지는 무능력한사람으로 비쳐지는것이 정말 싫었습니다.
이런점을 보니 내가 일찍 집사람만나서 결혼하게되어서 살림을 일찍 시작하고 어린나이에
아이의 아버지가 되고 가장이되다보니 그 책임감에 정신없이 살았던점도 생각나고
무엇보다도 아이를 일찍나아서 일찍친구들보다는
10년앞서간것이 정말 고맙고 감사함을 느끼게되었습니다.
사람이 살면서 고생을 안하고 살면 좋겠지만 아버지가 갑부도 아니고 물려받은 재산없고
모든것을 자기가 헤쳐나가야하는 상황이면 일이 좀 술술 풀리고 주위의 도움도 좀 받고
그리살아야하는데 저같은 경우는 정말 가시밭길을 헤쳐나와서 이제 큰 신작로에 도달했습니다.
남들에 비하면 조족지혈이지만 그래도 내인생에 남에게 돈빌리러 다니지않는것만큼
더 큰 행복은 없고 도리어 요즘은 남에게 빌려주면서 살게되었으니 이게 제인생에 봄인가봅니다.
아직 큰일들이 많이 남았지만 저에게도 언젠가는 좋은날이 오리라고 생각합니다.
제인생에 봄날에 저도 한번 활짝핀 벚꽃마냥 그렇게 환하게 웃어봤으면 정말 좋겠습니다.
우리집 화단에 벚꽃이 정말 만개를 했습니다.
일본사람들은 이런날을 위하여 벚나무가 꽃망울 맺으면 수만은 사람들이 그 나무 밑에
몇일을 텐트를 치고 기다려서 꽃이 피기를 기다려서 온식구들을 불러모아서
술과 안주 도시락준비하고 음주 가무를 한다고 합니다.
그리는 못하더라도 가까이 있는 진해는 못가더라도 만개한 벚나무밑을 마음대로 거닐수 있으니
이 또한 큰행복같습니다...
저보다 행복한 사람이 있을까요....
우리집밑에있는 벚나무의 만개모습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