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어버이날에..

짬스탑 2009. 5. 8. 21:48

신록이 짙어가는 오월의 전반부의 어느날입니다.
저기 물건너 미국땅에서 하얀카네이션의 이야기가 한국으로 건너와서는 
어느덧 어머니날로 자리를 잡더니 그 어느새 벌써 뿌리를 내려서 
어머니날 혼자는 좀 그렇고 아버지까지 함께 하는 
그런 어버이날로 변해서 만들어진날이 다가왔습니다.

 

어제 저녁입니다.. 밤이 9시가 넘어야 퇴근을 해서 들어오는 아들이 갑자기 들어오면서 봉투2개를 내밉니다. 부지런히 아들방에서 컴을 하고 있는 나와 큰방에 있던 집사람은 별안간 놀라는 모습입니다. 지금껏 어버이날에는 작년에 처음 우리아들과 하단에 가서 돼지갈비집에가서 폭립이라고 돼지갈비를 한번 먹어본것이 어버이날의 최고의 선물이었는데 올해는 전혀 예상도 못한 현찰 선물을 내밀면서 지금 입는 옷들을 이제는 마음에 드는 깨끗하고 산뜻한 옷을 사입으시라고 당부를 합니다. 아버지가 옷을 추하게 입는것이 보기에 싫었던가봅니다. 깔끔하게 사는 모습이 보기는 좋겠지만 저는 옷이 떨어져서 못입기전에는 옷을 잘 버리지 못합니다. 요즘에는 옷을 떨어질때 까지 입는 사람은 볼수가 없고 다만 유행에 뒤쳐지거나 싫증이나서 버리는 사람이 대부분이랍니다. 아들이 큰맘먹고 엄마랑 아버지랑 각 각 10만원씩 봉투에 담았습니다. 생전 머리털나고 이런 선물은 처음이라서 어안이 좀 벙벙합니다만... 우리집사람은 고맙다고 말하고 봉투를 받아챙겼습니다. 나는 우리 엄마와 아버지 살아계실때 선물은 커녕 카네이션도 잘 못 달아드렸는데 말이지요.. 벌써 우리아들은 엄마 아버지에게 선물을 다 해주니 말입니다.. 우리아들이 벌써 나이가 32살이 되었습니다. 30살이 넘으니 이제 자기도 돈을 벌고하니 엄마 아버지 챙길 정신적인 여유가 생기는가봅니다. 요즘 연애사업에 바쁘고 또 직장에서도 바쁘고 돈은 조금 받아서 주택부금 갚는다고 이번 8월까지는 경제적으로 여유가 없습니다. 그런와중에 엄마 아버지 깔끔한 옷이라도한벌 사입으라고 자기의 용돈 털어서 주는가봅니다. 나는 원래 이런 표현을 잘 못합니다. 특히 경상도 남자들은 더 더욱 이런 표현에 약하기에 그냥 넘어가는데 .. 우리집 사람은 아들에게 고맙다고 하면서 싱글 벙글입니다. 우리집사람 말은 이런것을 주면 그냥 사양하지 말고 잘받고 고맙다고 해야 다음에 또 주지 그렇지않고 괜찮다고 하면 정말 괜찮은것인줄 알고 다음부터는 주지않는다고 말입니다...

  아들이 어버이날 선물로 내민 선물 봉투입니다.

아직 직급도 낮고 대리밖에 않되서 돈은 많이 받지못하는 우리 아들이 어버이날인줄 돈도 없을것인데 이런것에 관심이 있는줄은 나도 몰랐습니다... 솔직히 내가 일하는 우리 화물 주차장에 차주겸 기사가 한20여명있습니다. 그 중에서 옷 잘못입기로 소문이난 사람이 3~4명이 있는데 .. 그중에 저가 랭킹2위랍니다...^&^ 저야 뭐, 노동하는 사람이 일하는데 걸거치지만 않으면 아무작업복이나 그냥 일하는데 지장이 없으면 되는 옷을 어떨때는 외출복을 작업복 삼아서 입고 일을 합니다.. 그런데다가 몸이 또 짜리 뭉퉁해서 배는 나오고 머리는 좀 벗겨지고 여러가지의 여건에 모두 미달되는 체격조건을 가졌습니다. 그러다보니 아무리 좋은옷을 입고 돌아다녀도 좋은 맵시가 나올수가 없습니다. 이런모습이 아들에게는 별로 였던것 같습니다. 돈이 아무리 많아도 자신의 몸이 않따라주는 맵시를 어찌 하겠습니까... 아들은 아버지를 보기에 좀 있어보이고 옷도 비싸고 깔끔한 옷을 입고 위엄이 좀 나고 그랬으면 하는가봅니다.. 어버이날 선물로는 그냥 옷을 사주는것보다는 현찰로 필요한것을 구입하셔서 입으라고 선물을 하는데 저에게는 이런것이 어차피 맞지않는것이 저의 한계입니다. 마음만 고맙게 받아야지요.... 살다보니 제가 이런 선물도 받아보고 살아갑니다. 이제와서 생각하건데... 우리 부모님들 살아계셨을때 나는 어버이날 어떻게 했는지를 뒤돌아보니 별로 머리속의 기억에 남는행동을 한것이 거의 없습니다... 기껏 해야 초등학교 다닐적에 학교에서 공작시간에 종이 카네이션 만들어 그것을 집에 가져다가 엄마에게 달아드리고 한것밖에 기억이 없습니다... 이제는 벌써 장가도 않간 우리 아들이 엄마 아버지에게 선물을 하는 나이가 되고 나도 이제는 선물을 받는나이가 되니 뭐가 좀 이상하고 어색한 분위기 같습니다. 내가 뭐, 벌써 선물받을 때가 아닌데 싶기도 하지만 집사람은 마냥 좋아라합니다..

 

오늘 작업하러 나갔더니 모든 남자들이 어버이날에 대해서 이야기를 하는데 보통 어제 미리 식구끼리 저녁식사나 가족행사로 보내고 선물도 받고 오늘은 집에 일찍들 들어오시라고 했다는것입니다. 나는 이런일에는 아직 문외한입니다... 내가 우리 부모님에게 잘 하지 못했고 그냥 먹고 살기에 바빠서 정신 못차리고 살다보니 이런 경우를 당하니 그냥 무덤덤하니 좀 그렇습니다... 지금 저의 어머님이 살아계셨으면 제가 더 잘했을런지 아니면 부모님이 저의 짐이 되실런가 그 판단은 제가 아직도 어려서 잘 못하겠습니다만은 우리 아들이 하는것을 보면 아마도 저 역시도 부모님께 잘 하지 않았겠나 싶습니다. 한 평생 고생만 하신 우리엄마가 무척이나 생각나는 날입니다. 우리들 5남매를 먹여살린다고 좌천동 산동네 피난민촌에서 먹을것이 없어서 새벽에 콩나물 키우는 공장의 배수구에 대바구니를 받치시고 콩나물 대가리가 물을 줄때 떨어지는그 콩대가리(이걸로 죽을 끓여서 먹습니다.) 겨울이나 그추운날에도 대바구니를 물주는 시간맞춰서 받아서 자식들에게 양식으로 먹일려고 노력하시는 그런것이 생각나고 한평생 고생만 하신것이 너무 생각하기도 싫습니다. 한번이라도 돈걱정없이 살아볼날을 기다렸는데 죽는 그날 까지 돈 걱정만 하시다가 가셨으니 자식된 저의 입장에서는 너무 가슴이 메어지는 어버이날입니다. 자식이라고 다섯이 있었지만 .... 첫째큰애는 초등학교 졸업과 동시에 가출해버리고 둘째는 어릴때 부터 눈이 이상이 생겨서 고칠려고 무단히도 노력했건만 결국 평생을 어둠속에 살다가 송도 매립지에 빠져서 익사를 하고 .. 셋째 누나는 못먹어서 영양실조와 열악한 환경속에서 폐결핵으로 사망하니 그리고 나 넷째는 지금 심장병나마 이만큼 잘 살고 있어 다행이고 다섯째는 세상살기가 너무 어려워서 자살을 했습니다.. 이런 어려운 삶을 살아오는어머니의 인생은 어찌 하루라도 근심걱정없는 날이 있었겠습니까.. 어버이날 아니 아버지 보다는 내 어머님의 너무나 고달펐던 인생이 위로 되는 그런날이 어버이날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저라도 돈을 좀 잘벌어서 어머님의 마음을 달래드려야 하는데 솔직히 학벌도 딸리고 머리속에 들은 지식이 적으니 크게 사업할 사람도 못되고 그냥 밥술이나 굶지않고 잘 살아가는것이지만 마음 한쪽에서는 그렇게 애환이 많았던 우리 엄마 ... 참으로 기구한 운명이었습니다... 지금 시대에는 그런 여자 없습니다.. 이 정도의 어려움이 닦치면 거의 애들 다 버리고 자기만 살려고 도망을 가는 사람이 태반일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어버이날 참으로 우리 엄마를 되돌아볼 참회의날인것같습니다.. 지금이라도 어버이가 양친 아니 어머니 아니아버지 한분만이라도 계시는분은 다른날도 잘 해야겠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어버이날은 꼭 전화 한통 하시고 부모님 기분좋게 해드리시길 바랍니다... 나도 하늘나라에 계신 우리 엄마에게 전화 한통 넣어봐야겠습니다.. 지금 잘 살고있다고요... 손자가 용돈을 선물로 주더라고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