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처남과 함께..(2)

짬스탑 2008. 3. 28. 09:27


진안 마이산 안내판앞에선 우리 처남.. 밤9시가 넘은 저녁시간에 정읍고모댁을 나섰습니다. 두 노인네는 밤8시 뉴스만 보시고는 바로 취침에 드시기에 우리는 폐를 끼치기가 싫어 일찍일어났습니다. 이제 9시가 조금넘었습니다. 비는 하루 종일 구질구질하게 내립니다. 장인어른 산소를 가서도 절을 할때도 비가 내리는데 내가 차에 실고 다니는 은박지 자리가 이날 크게 빛을 발했습니다. 밤9시가 조금 넘은 시간 우리는 또 어디로 발길을 돌려야 할지 몰라서 다시 상행선 호남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어디를 가야 할지는 아직 미정입니다. 우리 처남은 살면서 이런 뜬끔없는 무작정 여행 경험이 없어서 어찌 할줄을 모릅니다. 일단 대전을 나가면서 내가 핸드폰으로 오늘밤을 어디서 보낼것인가를 찾아가면서 운전을 합니다. 정읍에서 대전까지의 거리가 한참되기에 그 동안에 결정만 하면 되는것이기에 안심놓고 달렷습니다. 운전해 가면서 경기도 성남에 있는 처제집에 전화를 했습니다. 예전에 그 집에 아이들이 어릴때는 1박을 하고 가도 문제가 없었는데 요즘에는 아이들이 부쩍 커버려서 방이 비좁게 되어서 조금 문제는 있습니다. 그래도 일단 전화를 넣어봅니다. 반갑게 전화 받는 처제의 목소리는 상냥하게 들립니다. 오늘밤 그 곳에서 신세를 좀 지면 어떨까 ? 하고 물으니 난색을 표합니다. 자기(아랫동서) 남편이 사업상인지 아니면 경조사인지 술이 떡이되어들어와서 지갑도 다 잃어버리고 해서 집안 분위기가 좀 그렇다는것입니다. 그러면 되었다하고 다른곳으로 전화를 돌렸습니다. 다음에는 경상북도끝에 있는 점촌옆에있는 상주시함창읍 입니다. 예전에 함창읍은 탄광이 잘 돌아가던 시절에는 개도 돈을 물고다녔다고 합니다. 지금은 점촌이 커져서 함창을 잠식해들어오고 있는 수준이라고 합니다. 전화를 상주로 넣었습니다. 고모가 전화를 받으시는데 살갑게 전화를 받으십니다. 지금 고속도로 대전쪽을 빠져나가고 있는데 상주에 가도 되겠느냐고 전화를 했더니 아주 좋다고 빨리 오라는것입니다.
상주 함창읍에 사시는 고모부님 집앞 홍매화 앞에서.. 제가 도착 시간으로 밤 12시반을 정했습니다. 그때 까지 기다릴테니 뭐 먹고싶거나 필요한것이 없는지를 물어보십니다. 그래도 조카사위라고 많이 챙겨주실려고 그러십니다...ㅎㅎㅎ 저는 처남과 함께 가고 있으니 맥주나 한병만 사달라고 했습니다. 이집에는 아이들이 다 커서 이제 영감함멈 두분이서 외손자를 키우는 재미로 사시고 계십니다. 방이 많은데 아이들이 다 커서 결혼들하고 나니 큰집에 두분만 계시니 우리의 잠자리 같은것은 문제가 없습니다. 상주 고모댁 아이들은 모두 직장이 좋고 어릴때 다들 공부를 잘해서 큰아들은 용인에서 하이닉스 과장을 하고 있고 큰딸은 서울에서 선생님을 하고 있는데 그 사위도 선생입니다. 둘째 딸은 고모부집 바로 앞에 함창읍 큰 마을 금고의 행원으로 근무하고 있는데 그 집아이들을 고모님 내외분이 챙기고 계신것입니다. 역시나 그 집부부도 둘다 행원으로 금융권에 취직을 해서 점촌에 새 아파트에 살고 있는데 고모부 내외분이 아침이면 그곳으로 출근해서 아이들 챙기고 학교 보내고 점심 차려주고 학원까지 보내면서 저녁이면 자기집으로 돌아오시는 이중살림을 하고 계십니다. 그리고 막내는 사내인데 이놈도 공부를 잘해서 서울 초등학교 선생을 하고 있는데 이번 5월10일날 서울에서 결혼을 한다고 합니다. 한 4~5년전에 주식에 투자해서 한1억 털어먹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이 돈을 만회 할려고 선생 급료로는 모자라서 학교가 끝나면 아르바이트를 하고 글을쓰고 책을 만들고 해서 어느정도는 만회가되었다고 합니다. 비싼 수업료 내고서 주식을 배운것이지요.. 뭐, 저도 할말은 없지만..... 이 막내는 기탄수학이라는 아이들 학습용교재중에 수학을 잘해서 기탄수학책 2권을 출판했고 그리고 음악에도 조예가 있어서 음악교본도 만들고 책을 제법 많이 출판했습니다... 판권과 고료를 벌어서 그 빚을 갚아나가고 있는것입니다. 부모에게 손벌리지않고 참으로 대단한 청년입니다. 이번5월에 결혼을 하는데 신부측에 아직 빚이 있다고 알렸다고 합니다. 빚이 없는 사람도 많은데 자신에게 빚이 있으니 같이 고생해서 갚아 나갈것인데 그러면 살림이 당분간은 궁핍할테니 능력을 알아보고서 시집을 오라는것이지요. 그래도 예비 며느리집에서 OK 했다고 합니다. 내가 봐도 대단한 젊은이입니다. 일단 예정시간 밤12시반에 함창에 도착했습니다. 요즘은 도로가 좋고 여기저기 고속도로가 뚫여있어서 아주 길떠나기 편합니다. 그런데 우리가 길을 대전에서 김천구미사이에 있는 중부내륙고속도로를 타고서 들어갔습니다. 도착하고 보니 충주에서 상주쪽으로 고속도로가 더 빠르단것을 알았지만 할수 없이 조금 돌았습니다. 조용한 밤12시 넘어서 함창읍에 도착했습니다. 고모댁은 역앞 파출소 바로 뒤에 있기에 찾기가 수월합니다. 그리고 저는 길눈이 좋아서 한번 와본곳이면 잊어버리는 경우는 없습니다. 차엔진 소리가 소란스럽게 담을 넘자 고모부가 이제 왔는가 싶어서 나오십니다. 반갑게 맞이 하시는 내외분과 늦은 밤시간 동네가 시끄럽지 않게 집으로 얼른 들어가서 인사를올리고 같이 맥주를 한잔하면서 집안간 이야기를 나눕니다. 맥주 한잔 후에 나눈 이야기가 꽃을 피웁니다. 어느덧 밤도 깊고 이제 3시가 다 되어가니 자야할 시간입니다. 대강 씻고 자야 합니다. 잠잘방에 들어가니 요즘 기름값도 비싼데 아주 방이 절절 끓도록 보일러를 돌려놓으셨더군요. 여독을 풀겸 우리는 맥주한잔에 처남은 코를 골면서 자더군요. 저도 깜빡 잠이 들었다가 항상 일찍일어나는 습관 때문에 아침6시경에 일어났습니다. 머리숱이 별로 없는 관계로 매일 아침에 머리를 감지 않으면 사람 몰골이 초라해서 일찍 머리를 감고 변도를 하면서 화장실도 가고 부산을 떨고 텔레비젼을 보려고 하니 이 집 식구들이 모두딸내 집(점촌)에 가고 없습니다. 누워서 한참을 텔레비젼을 보고 있으니 처남이 코를 밤새 다 골았는지 이제 일어나서 씻으러 갑니다. 주인도 없는집에서 우리는 밖에 화단의 정원석을 구경합니다. 이집에는 돌이 엄청많습니다.
마당에 널린게 돌입니다. 예전에 고모부의 부친과 함께 상주일대에서 골재 채취업을 하셨던관계로 수석에 취미가 있어서 엄청나게 많은돌이 집에 있습니다. 한참을 돌아보고 있으니 이제 고모부가 오셔서 아침먹으러 가자는것입니다. 평소때에도 이집에서는 식사는 거의 하지않고 잠만 이곳에서 자신다고 하네요. 아침에 딸내외가 출근하면 아이들 학교 준비물을 챙겨서 학교를 보낸후에 그 곳에서 아침식사를 하게 된다고 합니다. 하긴 거리가 4~5분 거리이니 그래고 될것 같습니다. 이곳에서 아침을 간단히 합니다. 어디를 가나 얻어먹는데는 소질이 있고 좀 뻔뻔함과 너스레가 제 생명줄입니다. 그래야 어디를 가도 굶지는 않지요...^&^ 고모딸집을 구경합니다. 이 아파트는 우리집과 같이 35평형인데 우리집은 전용면적이 25.7평인데 이 집은 전용면적이 35평입니다. 그러니 부산의 45평형과 같습니다. 촌이라서 그런지 땅값이헐어서 그런지 아무튼 지은지 3년밖에 않되었다고 하는데 시설이나 그런것은 손색이 없고 집은 크고 살기는 쾌적하니 좋았습니다. 그 곳에서 조금 이야기를 나누다보니 어느덧 점심 시간입니다. 고모님내외는 바로 밑에 보리밥 뷔페가 이곳 점촌에서 인기가 있다고 그 곳을 가서 본인들 먹고 싶은것을 먹자고 합니다. 점심은 뷔페로 간단히 해결하고 우리는 또 길떠날 채비를 합니다. 처남은 나가면서 어제밤에 늦어서 아무것도 사오지 못했다며 고모부 좋아하는 담배 한보루를 사옵니다. 그래도 고모부님은 손사례를 치시지만 조카가 사온것에 흐뭇해 합니다. 작별인사를 하고 이제는 서울쪽으로 차 머리를 돌립니다. 이제 갈곳은 부산에서 사시다가 둘째 아들 사업때문에 서울쪽으로 이사 가신 고모댁입니다. 사시는곳은 경기도 덕소입니다. 아마 양평가는길에 팔당못가서 있는 곳인데 예전에는 좋은 아파트에 사셨는데 아들이 사업실패로 그 아파트도 날리고 이제는 작은 전세를 얻어서 고모내외분만 계십니다.
서울외곽 경기도 덕소 도심 지하찰 역앞에서... 이 집의 아들이 많은데 큰아들은 아직 변변한 직업이 없고 .. 둘째는 경희대 앞에서 대학생 상대로 양분식 음식점을 운영한다고 합니다. 막내는 김범룡의 수제자로 들어가서 노래도 취입했는데 별로 반응않좋아서 이제는 가수의 길을 접고 둘째 형님에서 음식가게일을 배우고 있다고 합니다. 우리가 도착해서 저녁을 먹고 도착했다고 전화를 하니 밤11시에 가게를 마치고 아버지댁에 들리겠다고 합니다. 나는 성남에 있는 처제와 동서를 불러올렸습니다. 전날의 숙취탓에 피곤하겠지만 윗동서가 부르는데 않올수 있습니까.. 저녁을 같이 하고 이런저런 얘기로 회포를 푸는데 나는 저녁후에 배도 부르고 잠도 오고 해서 먼저 잠자리에 들었습니다. 내가 자는 동안에 처남의 친구인 둘째아들과 셋째와 같이와서 새벽3시끼지 처남과 이야기를 했다는군요. 나는 또 일찍일어나서 부산을 떱니다.. 모두들 자는데 나 때문에 다 잠을 깹니다. 나는 직업상 늦어도 6시경이면 무조건 일어납니다. 그러다보니 본의 아니게 다들일어나서 아침준비를 하고 씻고 부산을 떱니다. 아침 식사후에 이제는 부산에 내려가서 일 할때가 되었다고 했습니다. 처남은 가다가 제천에 내려주고 가라는데 일단 덕소에서 광주나가는 고속도로를 탔습니다. 그 곳에서 다시 동서울이 나옵니다. 다시 호법에서 영동선을 탑니다. 그리 가다가 만종에서 다시 대구 내려가는 중앙고속도로를 탑니다. 제천에 도착합니다. 처남과 함께 제천 버스 터미날 근처에서 점심식사를 하고 내가 차비를 좀 주려니 한사코 거절을 합니다. 누나가 주라고 그래다고 해도 한사코 거절하내요. 할수 없이 작별인사를 하고 다음에 창원에 결국 내려와야하기에 다음에 내려오면 그 때 만나기로 기약하고 악수를 하고 헤어졌습니다. 저 혼자서 이제 중앙고속도로를 목소리 크게 하고 못부르는 노래를 불러가면서 계속 90km을 유지하면서 부산 까지 논스톱으로 달렸습니다. 부산에 도착해서 이번에 GPS가 업그레이드를 못해서 불편한것을 정리하러 대리점에 가서 업그레이드를 받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동안 달린 거리가 1.260km입니다. 코에 바람을 넣은것치고는 좀 많이 달렸습니다. 그래도 장인산소에 갔다온것이 제일 마음에 남습니다. 장거리 운행에는 GPS가 매우 중요하더군요. 이번여행에 많이 느꼈습니다. 이제는 일만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앞으로 처남일이 잘되어서 서로 고민없는 세상을 살았으면 좋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