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이야기

부자 유별.(父子有別)

짬스탑 2007. 11. 18. 16:25


날이 많이 차진 11월17일날 아침에 직장 동료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

날이 많이 차가워 졌습니다... 모두 우리 주차장 대기실에 모두 모였습니다. 평소에는 잘들 아침에도 뿔뿔이 흩어져서 돌아다니는데 어제 따라 찬바람이 불고 바닷가앞자락이다보니 바다바람이 세게불고 온도가 급강하를 해서 사람들이 오갈데가 없으니 동시에 다 모인것입니다. 전기난로 히터가 3개고 위의 바닥은 전기 온돌로 뜨뜻하니 모두 온돌 바닥위로 다 올라갔습니다. 전기세를 우리가 내지않고 앞의 회사 (참손)에서 다 공업용으로 무료로 공급해주니 돈 걱정하지않고 따뜻하게 지낼수 있습니다. 지금 까지 여름 남방하나에 작업복 대용으로 입고지내다가 어느덧 가을이 만추(晩秋)가 되다보니 윗지방에는 서리가 내리고 기온이 뚝 떨어져서 영상 5도를 가르킵니다. 가을은 결실의 계절이다보니 이쪽 저쪽으로 결혼식이 엄청나게 열리고 조금만 안면이 있으면 청첩장이 마구 날아듭니다. 지난 9월부터 거의 휴일이면 예식장 순례가 이어집니다. 사람이 사는것이 모든 생물이 사는것과 같습니다. 식물은 씨가 발아해서 떡잎이 나고 그리고 봄날을 지나서 여린잎이 더운 여름날의 뙤약볕과 큰비를 맞으며 무럭 무럭 성장한다음에 꽃이 피고 벌나비가 수정을 시켜서 가을에는 열매를 맺는것같이 그리고는 열매속에 씨를 남기고 다음후손을 기대하며 자기의 생을 마감하는것이 이 세상의 모든 생물에게 적용되는것 같습니다.




사람은 어려서 태어나서 엄마의 보살핌으로 크면서 유아기를 지나고 학교를 다니면서 인간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과정과 살아가는데 도움이 될것을 배우는데 오랜시간을 보내면서 성장을 합니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20대가 넘으면 두발로 선다고 이립(二立)이라고 하면서 독립을 할수 있는 시기가 오는것입니다. 그 과정을 키우는 부모는 모든 정성과 보살핌으로 키우느라고 겉 껍질만 남고 속은 다 자식들에게 내어주고 자기는 그야말로 빈껍질이 되어갑니다. 그리고 이제는 열매를 맺었으니 손자가 나오면 그야말로 씨를 뿌리고 자기의 인생은 책임을 다한것이 모든 생물과 같은것입니다. 온 세상의 나라사람중에 특히 우리나라사람들의 자식사랑은 너무나 끔찍합니다. 서양이나 구라파쪽은 약18세를 전후하면은 자식들 스스로가 독립을 하고 부모의 그늘에서 탈피 할려고 무척 노력하는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모든 부모들은 자식이 나이가 30살이 되도록 함께 살려고 아주 마마보이 아니면 품에 끼고 살려고 하는 도가 너무 지나치다는것이 문제입니다. 이 문제는 솔직이 저도 말할 입장이 되지는 못합니다. 저 역시 서른이 되는 아들이 주말 마다 집에와서 빨래감이나 옷가지를 가지러 옵니다. 빨리 저도 아들을 내 보내서 독립을 시켜야 하는데 말입니다. 우리집 사람이 아직까지 세탁이며 다리미질을 하느라고 몹시 바쁜 지경이다보니 아직 우리아들도 부모품에서 못 벗어나고 있다는것이 사실이니까요.. 그리과 벌써 26살된 딸도 있습니다. 딸은 그래도 남자 친구가 있어서 큰 문제는 없습니다. 우리딸은 지금이라도 혼례를 치를수 있지만 그 건 문제도 아니고 일단 첫째인 아들부터 정리를 해야되는데 이게 말처럼 쉽지만은 않다는것입니다. 없는 살림이지만 아들앞으로 살림을 할수 있는 작은 아파트도 준비 되었고 그래도 앞으로 유망한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 회사에 이제 돌아오는 3월이면 대리를 달게 되는데 여자를 데리고 와도 밥은 굶기지 않겠는데 그런 아가씨가 없다는것이 바로 문제 입니다.



우리 아들은 회사가 예전의 김해의 녹산 그러니까 삼성 자동차 공단을 지나서 있는것입니다. 부산에서 진해가는 길의 입구에 있는 회사인데 미국의 보잉사의 비행기 부품을 만드는곳으로 전체 매출액의 1%를 책임지는 곳이라고 합니다. 월급은 그리 많이 못받습니다. 그래도 누가 처음부터 많이 주는곳이 있습니까... 오래있고 경력이 붙어서 진급을 하면은 호봉수도 올라가고 돈도 많이 받게되겠지요... 그런데 우리 아들 초등학교때나 여자들과 같이 있어봤지 중학교때도 남학생만 있는 학교 고등학교때도 남학생들만 있는곳 을 다녔고 대학교때도 공과 대학을 다니다보니 여학생들이 없는그런곳을 다녔습니다. 그리고는 군대 갔다오고 다시 회사에 취직하니 허허벌판에 아가씨하나 없는 그런 공단에 경리마저 남자 경리를 쓰는 회사 이다보니 여성이란걸 접해볼 기회가 없어서 어쩌다 아가씨를 만나면 여자를 구슬리는 법을 모르고 그냥 싫으면 싫다고 바로 단칼에 짤라버리고 애걸복걸 살살녹는 얘기를 할줄 모릅니다 그러다보니 아가씨가 남자가 무뚝뚝하고 별로 말이 없고 여자를 위해주는 그런매력이 없으니 몇번 만나고 헤어지고 소개해주면 마음에 않든다고 말아버리고 지금 실정이 그런 실정입니다. 남들이 결혼하는 식장에 자주 가보지만 우리 아들보다 나이 어린 새신랑이 아주 많았습니다. 그런데 아직 인연이 덜 익었는지 임자를 못만나고 있습니다. 저도 예식장을 자주 찾는다는것이 남들이 웃을 소리이지만 이제 뒤를 돌아볼 나이가 되었다는것이지요.. 벌써 내 친구들 중에서는 더러 혼사를 치르신분도 계시고 아직 준비중인분도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많은 내 또래들은 자식들이 아직 대학교를 다니거나 군대를 다닙니다. 내 경험에 의하면 저는 17살때부터 연애를 했는데 18살때부터 살림을 같이 했습니다. 아이를 일찍낳아서 저하고는 19년 차이밖에 않납니다. 그런데 이게 장단점이 있습니다. 아이를 일찍 낳아서 기르다보니 엄마와 아빠도 어리고 같이 크다보니 잔정이 없고 처음낳은아이다보니 실수 연발을 해가며 키웠습니다. 그 때는 돈이 조금은 벌리던 시절이라서 지금같이 수입적어서 헉헉거리지는 않고 학원도 보내고 하면서 젊으니 그냥 살아왔습니다. 이제 이 나이에 아이를 하나 다시 낳아서 기르면 잘 기를수 있을텐데 하는 저의 생각입니다. 첫번째는 부모가 나이어려서 미숙함으로 보육에는 실패를 했습니다., 그러나 그때는 학원비도 싸고 돈도 잘벌려서 아무 문제 없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의 내 또래들은 지금 학원비에 대학 등록금에 여러가지 비싼교육비에 아주 정신을 못차리고 힘들게 살더군요.. 저는 애들을 일찍낳아서 기르다보니 그런시절을 모르고 살아왔습니다. 지금의 친구들은 일감이 떨어져서 돈벌이가 어려운데 아이들 교육비로 머리를 싸매고 다니는걸보니 내가 아이를 얼마나 일찍 잘 낳아서 키운것이 뿌듯함이 기분을 좋게 합니다. 역시 이런것은 매를 먼저 맞는쪽이 훨씬 좋은것 같습니다.



이 사진은 내 친구 구감님의 낙조라는 작품 사진을 좀 훔쳐왔습니다.


그러나 이런 좋은점도 나이 어린 새신랑을 보니 아버지로서 마음이 좀 찝찝한 점은 할수 없는것 같습니다. 이세상 만물은 다 때가 있는법인데 화무십일홍이라고 좋은꽃도 열흘을 넘기지 않는법인데 지금이 내가 생각해도 혼례의 적기이고 아이를 가져야 다음세대에 힘이 덜 드는법인데 조금은 늦은것 같습니다. 우리아들놈은 아무래도 제 아비를 닮지 않은것 같습니다. 이게 나를 닮았으면 벌써 여자를 한서넛은 안다리를 거둬었을것인데 말입니다..ㅎㅎㅎ 이제 인연이 나타나기만 기다립니다. 지금은 나타나도 집을 전세를 놓아서 내명년 여름까지는 계약기간전이라서 그 이후를 기약할것 같습니다. 아버지는 아가씨를 잘 꼬시는데 왜 우리 아들은 이런 소질이 없는지 .. 저와는 아들이 이런점에서는 너무 않닮은것 같아서 마음 한구석이 씁쓰레 합니다. 빨리 자기배필을 만나서 자기의 인생을 만들어갔으면 하는 부모의 마음입니다...